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 Jul 14. 2024

아직 꼰대는 아닙니다만

Not yet

삶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고

그만큼 각양각색의 가치관들은 충돌하기 마련이다.


타인의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은 건 당연하다.

겸허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고 나조차 어떤 면에서는 겸허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문제는 평생 거슬리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몇 명씩 만나왔어도 속으로 거슬리네, 하고 말았는데

요즈음 자꾸 입 밖으로 훈계가 나오려고 한다는 것.


아직은 참고 있는데......

이게 입 밖으로 “내 얘기 좀 들어봐요, 쉽게 설명해줄게?“ 하는 순간 꼰대가 되는 거겠지?


다행히 아직은 아니다.

Not yet.



가족들과 식당에 갔는데 입구에서부터 눈에 띠는 여자애가 있었다. 유치원생 정도 되어 보였는데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웃으며 다니고 사람들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고, 그 아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뿌듯한 듯 그 여자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슬렸다.

스스로 귀여운 줄 알고 사람들의 귀엽다는 반응을 당연하게 여기는 애는 내 눈엔 귀여워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의 식사를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데 애 엄마가 혼내기는커녕 그 상황을 즐기고 앉았다니.


그러고 자리를 안내받아 앉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애가 아니나다를까 우리 테이블로 왔다.

나는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신조가 짙은 사람, 뭘 먹을 때 건드리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근데 그 아이가 겨울왕국 노래를 부르며 얼음으로 변하는 시늉을 하라는 건지 뭔지 알 수 없는 요상한 손짓으로 내 식사를 방해하는 게 아닌가.


나는 반응하지 않고 웃지도 않고 그 여자애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 애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려 노려봤다.

그 애 엄마는 웃으며 날 보고 있었다.

살면서 늘 나는 노려봤다고 생각하지만 눈꼬리가 쳐져서인지 상대는 그냥 쳐다보는 걸로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그 아줌마도 그냥 쳐다보는 걸로 느낀 것 같았다.

내가 반응이 없자 여자애는 더 크게 노래를 부르며 우리 테이블 근처를 맴돌았다.

나는 우리 애들이랑 이야기하기도 바빠서

너의 노래까지 듣고 귀엽다 예쁘다 해줄 여유가 없어.


다시 한번 그 아줌마 쪽으로 날선 눈빛을 보냈다.

그 꼬마애를 노려보기는 싫었다.

두 번째 시선에서 눈치를 챘는데 아줌마는 여자애를 불렀고 우린 가족은 그때부터 식사에 몰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사 여왕은 식사를 마치고 떠났다.


그 때 문득 두 번째 시선에 눈치 채지 못했다면

내 입에서 “애기엄마, 애 교육 그렇게 시키는 거 아니에요. 라떼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운 여자아이의 사랑스러운 노래에

그냥 듣고 귀여워^^ 하며 한번 웃어줄 수도 있는 건데

왜 이렇게 속이 콩알만할까 싶은 반성은 차치하고,


내가 먼저 육아의 길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뒤따라 걸어오는 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훈계하는 마음이 육성으로 터져나올 뻔 하다니.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심정, 무슨 목적으로 그 길을 걷는 줄도 모르면서 훈계라니.


어머 애기엄마 애가 발이 춥겠어 양말 신겨요

애기엄마 애가 저럴 때는 꽉 잡아서 기를 꺽어줘야지

앞에서 길을 걸으며 나한테 저렇게 선생질 하던 사람들을 그토록 증오했던 나인데,


내가 그럴 뻔하다니?

소름.


거슬리는 사람들이야 늘 있었지만

훈계가 입 밖으로 나올 뻔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꼰대가 되는 걸까?



요즘 또 신혼부부들이 그렇게 거슬린다.

다들 자기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니 배우자가 완벽해보이는 거야 이해하는데,


보세요, 나의 결혼은 완.벽.해요.

내 남편 자상하고 듬직하죠?

내 아내 예쁘고 똑똑하죠?

우리 시부모님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세요.

나 장인어른 장모님이랑 이만큼 잘 지내요.

우리 정말 결혼 잘했죠?


이런 식의 피드들은 정말 거슬린다.

처음에야 다 그렇지,

제일 괜찮은 후보랑 결혼했는데 결혼했는데 웬만해선 마음에 안 드는 게 뭐가 있겠어? 전부 행복하지.

싸우고 울고 불고 해도 화해하면 재밌지.

모든 생활이 깔깔 즐겁지.

시트콤이나 로코 주인공이 된 마냥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만족스럽지.


애 낳고 십년만 흘러도 그저 그런데 말이다.

행복하지만 나만 행복한 거 아니고,

힘들어도 나만 힘든 거 아니고, 다들 그렇게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어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만 특별한 게 아니란 걸,

남들보다 내가 우월한 것도 아니란 걸 말이다.


그걸 아는 입장에서 보니 왜 이렇게 거슬리는 젊은 부부들의 피드가 많은지,

왜 또 꾸역꾸역 그걸 찾아다니며 보고 앉았는지.


알콩달콩이야 귀엽고 예쁘지.

울남편 울마눌 어쩌고 최고야 저쩌고 하는 게 꼴 보기 싫은 거다.

나도 한때는 나의 결혼이, 나의 남편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은근히 자랑도 하고 다녔다.


그때 별말없이 웃으며 좋을 때다, 해주시던 어른들을 닮아야 라는데

왜 자꾸 살아봐라 비아냥대던 어른들을 닮으려 하는지,

그 마음 언제까지 가나 보자 하며 훈계하던 어른들을

닮으려 하는 건지.


그런 꼰대로 늙고 싶지 않은데.



그러고보니

예전엔 눈빛에 반항기가 좀 있는 배우들을 좋아했는데요즘은 부쩍 예의 바른 애들이 좋다.

직장에서도 자기 주장 또렷한 후배보다는

내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후배들이 예뻐 보인다.


애한테 너무 맞춰주기만 하는 젊은 부부를 보면 괜히

한 마디 하고 싶고,

이렇다 할 꿈도 없이 그저 그런 직업에 만족하는 애들을 보면 꿈을 크게 가지고 노력하라 응원하고 싶고,

일이 힘들다는 애들에겐

그게 힘들면 세상에 널 위한 자리는 아르바이트도 없다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싶고,

내가 보기에 별일 아닌데 예민하게 굴면

내가 다 해봤는데 괜찮았으니까 정신 차리고 중요한 포인트에 집중하라고 훈수두고 싶고......


’싶고‘ 라 다행이지.

‘싶고’ 에 그치니 아직 꼰대는 아닌 거겠지.


그렇지만 언제 입 밖으로 라떼는, 이 터져나올지 모를 일이다. 위험하다.


스스로 꼰대가 아니고 말하는 사람은 꼰대라던데

아직 꼰대가 아니라고 말하면

나도 이미 꼰대인 걸까?


늘 생각한다.

괜찮은 어른으로 늙고 싶다고.

고요한 내면이 외면으로 이어져 안과 밖이 모두 아름답게 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 공부와 글쓰기,

내게 맞는 운동을 찾아 꾸준히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건 아량인 듯하다.

나의 시선에서 뭘 좀 모르는 것처럼 보여도

나아가 설사 매너가 없어보인다 해도 큰일 아니라면

지나치는 아량. 가르치려 들지 않고,

입이 근질거려도 그냥 지나치는 아량.


현명함.



후회가 된다.

어제 여자아이에게 웃어줄 걸 그랬다.

정색하고 그 아줌마를 노려본 스스로가 창피하다.


비슷한 상황이 되면 그런 꼬마를 향해

아량 넘치게 웃어줄 수 있을까?


그래야지, 다짐해본다.


저기요, 애기엄마.

애 그렇게 키우는 거 아니에요.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니까 잘 들어봐요.

나 때는 애가 공공장소에서 그러면......


...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게.

가뜩이나 삶이 분주한데

와중에 사사건건 충돌 많은 꼰대로 늙지 않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