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터는 언덕 꼭대기에 있다
아침부터 열심히 걸어 올라왔더니
일을 시작 하지도 않았는데 퇴근 컨디션이 되었다
불편한 옷의 봉제선 사이사이로 땀이 흘러 내린다
속치마가 허벅지 안쪽으로 들러붙는다
공들여 그린 눈썹 모양이 땀과 기름으로 뭉뚱해졌다
안녕하세요,
왔어요,
그저 주고 받는 인사조차 괜히 짜증이 난다
나의 썩은 표정을 보더니
누군가가 시원한 물부터 한 잔 마시라며 얼음물을 만든다
그는 나의 상사도, 나의 부하 직원도 아니다
평소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하루 두번,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인사만 주고 받는 사이인데
커다란 유리잔을 꺼내더니
정수기에서 달그닥달그닥 달그닥달그닥 얼음을 가득 내리기 시작한다
올라오느라 힘들었죠? 날씨 너무 덥죠? 밤에 못 잤어요? 얼굴이 피곤해보여요,
어쩌고 저쩌고 말도 없다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정수로 선택되어 있던 정수기의 모드를 냉수로 바꾸어서
정성스레 얼음 사이로 부어준다
도글도글 도글도글
컵 속에서 얼음 굴러다니는 소리가 마음을 조금 진정시킨다
두 손으로 영롱한 유리잔을 받아들고
쫘악- 시원한 물을 들이키니
식도 가득 차 있던 짜증이 물과 함께 쏴악- 씻겨 내려간다
밤새 웅크리고 자느라 잔뜩 주눅들었던 마음도
크악-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다시 하루를 치를 준비 완료
소처럼 개미처럼 일할 준비 완료
누군가의 길게 토닥이는 말보다
거창하게 차려 먹는 식사보다
비싼 카페에서 파는 아이스 커피보다
단순한 물 한잔이 이토록 힘을 주기도 한다
얼음만 남은 유리잔을 쳐다보며
얼음이 더 녹기를 기다리며 생각한다
단순하게 살고 싶어
나도 지친 누군가에게
단순한 물 한잔을 정성스레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의 일터는 언덕 꼭대기에 있다
그 언덕 꼭대기에는
지친 누군가를 응원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