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이 남긴 생각들

by 윤성

나라에서

건강도 챙겨주는 세상이다.


홀수년생인 나는

올해 국가 건강검진 대상이다.

1월부터 그게 마음의 짐이었다.

업무가 바쁜 2월이 지나고 받자 싶었는데

3월이 오자 아이들의 새 학기 생활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고,

4월과 5월은 조금 여유로워 양가 부모님을 챙기며 보냈다.

병원에 모셔가고 식사 자리도 자주 가졌다.

6월부터 또 업무가 바빠 정신없는 두 달을 보내다가

정신을 차리니 벌써 8월,

올해도

벌써 반이 넘게 지났다.


참 빠르다.

날이 갈수록 날이 빠르게 간다.


여기서 더 하반기로 가면

검진 예약을 잡기도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동네 적당한 규모의 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사십대가 되었으니 몇 가지 초음파와

콜레스테롤 검사 등을 추가했고,

날짜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고,

힘든 일은 걱정할 틈도 없이

덮치는 경우가 있다.


이번 건강검진을 앞두고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위 내시경이었다.

겁이 많은 나는 수면 마취가 무서워

이미 두 번이나 비수면 위 내시경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 고통과 치욕을 알기에

며칠 전부터 잠을 설쳤다.

눈 딱 감고 수면 마취로 진행할까 고민도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 위벽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몇 년째 역류성 식도염과 표제성 위염을 달고 지냈기에,

또 요즈음 왠지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느낌도 들어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 구역질과

눈물 콧물이 쏙 빠지면서도 목구멍에 호스가 꽂혀

제발 그만하시라!!!고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떠올라

전날 밤에도 고민을 했다.


당일이 되고

채혈을 하는 순간까지도 고민했다. 채혈 다음이 위 내시경이었다.

지금이라도 수면 마취로 진행할까, 채혈 바늘을 꽂은 김에......

고민하는데 간호사가 팔에서 바늘을 쑥 뽑았다.


- 혹시 지금이라도...

- 네?

- 지금이라도 위 내시경을 수면마취로 바꿔서 받을 수 있을까요?


차마 감춰지지 못한 황당한 기색이 그녀의 표정에 역력했다.

그녀는 굉장히 친절한 말투로 안된다고 했다.

사실 이미 뽑은 바늘을 다시 꽂는 것도 무서웠다.

너무 긴장한 탓에

이럴까저럴까 아주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였던 거 같다.

자신의 불안한 감정으로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보통

두 글자로 진상이라 부른다.


- 네, 그렇죠......


그렇게까지 진상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이해한다는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목소리보다 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내시경실 앞 대기석으로 향했다.


그런데

의자에 앉기도 전에 나의 이름이 불렸다.



하지만 역시 걱정하는 일은

의외로 편히 지나간다.


굉장히 능숙한 의사가

큰 이물감 없이 호스를 넣고 위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구역질은 두 번 밖에 나지 않았고

호흡에 집중하라며 간호사가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다시 볼 일 없는 두 사람의 깊은 배려가 느껴졌다.

가끔 이렇게

다시 볼 일 없는 타인의 배려에 굉장한 힘을 얻는 순간이 있다.


무더운 여름 밤

러닝을 하다 스쳐 지나는 누군가의 화이팅! 소리라든가

재활용 쓰레기를 양손 잔뜩 들고

엘레베이터에 탔을 때

말없이 분리수거장이 있는 층의 버튼을 눌러주는

손길 같은 것들 말이다.


이번 위 내시경을 받을 때

간호사의 손길이 그랬다.

잘 하고 있고 금방 끝난다며 등을 토닥이고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그 온기가

그렇게 힘이 될 수 없었다.


마치 애 낳을 때 잡았던 남편의 손과

견줄만했달까.



복병은 따로 있었다.


위 내시경을 끝내고 홀가분하게 남은 검사들을 기다렸는데

나머지는 모두 수월할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전에 받아서

그게 어떤 검사인지 잊어버린 검사가 남아있었다.

위 내시경만 걱정하느라

아예 안중에도 없었던 검사.

마치 키를 재고 몸무게를 달고 허리 둘레를 줄자로 측정하는 수준으로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검사.


유.방.촬.영.검.사.


호명이 되고 아무 생각없이 들어선 유방촬영실에서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웃통을 벗고 거의 20분을 기계 앞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검사방법이나 과정은 언급하지 않겠다.

떠올리기만 해도

아직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다.


사실 정말 즙이 나올 것만 같은,

살이 찢어질 것만 같은 가슴 통증이야

그래 정확하게 봐야지!

구석구석 잘 살펴보는 게 좋지 싶어 꾹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플라스틱인지 뭔지 모를 판이

계속 쇄골에 걸렸는데 부딪힐 때마다 그 통증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쇄골 뼈가 부러질 거 같아서 아악 소리를 지르면

검사를 하시던 분은 짜증을 냈다.


- 제가 다 알아서 하니까 가만히 좀 계세요!


나는 정말 가만히 있었는데......

쇄골이 부러져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었을까.

검사가 길어지니 얼마나 짜증이 날까 싶다가도

배려 없는 말투에 섭섭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화가 났고 인상을 저절로 쓸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나의 면상을 보며 그 분도 더 짜증이 났는지 왠지

더 거칠게 내 몸을 다루는 느낌을 받았다.


가로로 세로로 비스듬하게 수차례 촬영을 하고

검사실 밖으로 나아

나는 의자로 털썩 무너지고 말았다.

정말 영혼까지 털린 느낌이었다. 누가 가슴을 마구잡이로 꼬집은 것도 같았다.


그리고 고통에 못지 않은 수치심,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구박까지 받으며

노출(?)을 감행하며 돈까지 내고 이걸 촬영해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의 없는 거나 다름 없는 가슴인데 말이다.


나중에 동네 아줌마들에게 들어보니

전날부터 금식한 상태로 피까지 뽑은 다음 유방촬영을 하다가 졸도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세상에......

졸도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인걸까.

쇄골 골절의 공포와 치욕감에 거의 그 직전까지 가긴 했지만 말이다.



검진을 마치고 나오자

깨끗하고 새파란 하늘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목구멍 마취가 풀리면서 식욕도 돌았다.

배가 고픈 상태로 맛있는 음식을 찾아 즐기는 건 꽤 고차원적인 행복 아닐까.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배도 고파야 하고 걱정도 없어야 한다.

신경쓸 일이 없어야 한다.


내시경으로 본 나의 위는 깨끗했다.

내시경을 할 때마다 오돌토돌 솟은 정체 모를 돌기들을

제거하기도 했고

심하게 붉은 부분이 있어 한참동안 정밀하게 살펴보기도 했는데


이번 검진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 검사 잘 받으셨고 위 깨끗하시니까 2년 후에 또 오세요.


의사의 한 마디가 마치 훈장 같았다.

침과 콧물이 섞인 휴지로 입을 막고 있는데 나의 손을 잡아주었던 간호사가

휴지를 버려줄테니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 더러워요.


목구멍 마취로 어눌하게 말하자 간호사는 괜찮다며,

빼앗다시피 나의 더러운 휴지를 가져가고 새로운 휴지를 왕창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도 다시 만날 일 없는 누군가에게

그런 배려 깊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느낀 하루였다.

그랬던 적이 있을까?


앞으로 몇 번이라도 그럴 수 있을까?


그다지 신경쓰지 않은 나의 말이, 행동이,

그리고 미소가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긴 세월 내공이 쌓여야 가능할 일이다.

얼굴에 기분 좋은 주름부터 만들어야겠다.

자주 웃고 편안한 인상을 만들고 싶다.

공감과 배려도 지능의 문제라던데

습관처럼 타인을 배려하는

똑똑한 사람이고 싶다.


쓸데없이 걱정하는 시간부터 줄여야 한다.

위 내시경은 편히 지나갔고

의외의 복병이었던 유방촬영은 힘들었지만 그 또한 지나갔다.

쇄골뼈도 무사했다.

오래 고민하고 걱정했던 건강검진은 그렇게

나의 걱정여부와 관계 없이 흘러갔다.



반나절 금식으로 앞 자리가 바뀌었던 몸무게는

검진이 끝난 후

폭식으로 원상복귀 그 이상이 되었다.

빼는 데 반나절이 걸리고

도로 찌는 걸 넘어 플러스 알파까지 1시간밖에 걸리지 않다니

완전히 의욕 상실이다.


다이어트는 무슨,

건강하고 행복한 돼지로 살면 그만이지.


늘 하다마는 다이어트 대신

걱정 다이어트나 시작하기로 결심해본다.

쓸데없는 걱정 따위 줄여

미간을 펴고

부드러운 눈빛을 가지고 싶다.

따뜻한 표정을 짓고 싶다.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되어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며 공감하고 배려하는 사람이고 싶다.


의식하지 않고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행복하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프면 다른 모든 게 괜찮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