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많은 게 달라졌다.
나는 학교 근처에 집을 얻어 독립했고,
엄마는 그간 미뤄왔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아빠는 조카의 등하원 도우미를 자처하며
오빠네 아파트 옆 동으로 집을 얻었다.
오빠는 아빠가 답답한 아파트 생활을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 했지만 아빠는 나름 즐기는 듯했다.
결코 작지 않은 변화에 제각각 적응하며
그렇게 우리는 흩어진 봄을 맞이했다.
작은 텃밭이 딸린 집에는 엄마 홀로 남았다.
- 조금 쓸쓸하고 조금 편안해.
함께 심던 상추, 고추, 토마토 모종을 홀로 심으며
엄마는 그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그 감정이 행복과 같은 결이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넷이 하던 일을 혼자 하며
낄낄 웃다가 괜히 쥐어 짜다가를
저녁까지 반복했다고 한다.
- 왜?
나는 순수하게 물었고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옅은 한숨을 뱉으며 웃을 뿐이었다.
가족들에게는 친구가 미국으로 가며
살던 집에 나를 살게 해주었다고 둘러댔지만
사실 그 집은 그 사람이 얻어준 거였다.
있는 집 아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고작 서른 나이에 애인에게 이런 집을 얻어줄 정도라니
생각보다 더 대단한 집안 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집에 처음 들어서던 순간 느꼈다.
아, 이 남자랑
결혼까지는 못 가겠군.
집은 주택가 골목 가장 끝에 위치했는데
학교 후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고
내가 다니는 경영대는 후문에서 3분 거리였다.
본가에서 매일 버스를 환승해 1시간씩 다니던 생각을 하면 호강도 이런 호강이 따로 없다 싶었다.
독채인데 주택라기엔 작았지만
복층 구조라 혼자 살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현관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주방이 있었고
인덕션과 식기세척기가 빌트인 된 구조였다.
맞은편으로 작은 식탁과 책상,
구석에는 욕조가 있는 욕실이 보였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침실이었는데 퀸 사이즈 침대에 보송보송한 이불이 있었는데
모두 직접 산 거라며 뿌듯해하던 그 사람의 표정에 왠지 마음이 아렸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그 집은
그 사람의 부모가 그 사람의 신혼집으로 준비해둔 건 아니었을까, 그런 직감이 들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물어보진 않았다.
그저 2학기 남은 대학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싶었고
시간을 쪼개 공부해야 했고
날 좋아하는 사람의 호의를 굳이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 사람과 편하게 만나고 싶기도 했다.
일주일에 겨우 두어번 만나는데
밖에서 뭘 하고
어디로 갈지 뭘 먹을지
또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그 집 2층에는 빔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 사람과 함께
밥을 해서 먹고 영화를 보고
나는 공부를 하고 그 사람은 일을 하고
그러다 보면 늘어지는 저녁 볕이 집안 구석까지
들어찼다. 그럼 또 그 볕을 함께 오래 바라봤다.
어떤 날은 아무 말도 없이
그 볕이 다 사라질 때까지 바라만 보기도 했다.
헤어지면 그 집에서 나오면 그만이라며,
자꾸만 고개를 드는
정체 모를 자존심과 불안을 꾹꾹 눌렀다.
그 사람은 결혼할 여자가 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내게 조언해줄 사람은 없었다.
가족들은 몰랐고
친구는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