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절교 이야기 9

by 윤성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그녀는 명품을 사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랄까? 루이비통, 구찌, 에르메스 등. 틈만 나면 명품 사이트에 가서 시즌 가방이나 스카프 등을 구경한다. 그리고 비슷하게 만든 가품을 1/10 가격에 구입한다.


반면 나는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져본 적이 없다. 명품도 해외여행도 내겐 어려서부터 딴 세상 이야기였다. 여대에 입학하면서 비싼 가방이나 악세사리를 들고 차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도 몰랐고 그런 건 어디서 사냐 예쁘다고 했고 그러다 길거리에서 비슷한 게 있으면 사서 들고 차고 다녔고 뒤늦게 그게 명품 브랜드의 가품이라는 걸 알고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진짜 명품이 얼마 정도 하나 찾아봤던 기억. 우리 가족의 한달 생활비를 넘어서는 가격에 기절할 뻔했던 기억 등.


지금보다 어릴 때는 그런 비싼 물건을 척척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레 포기를 했더랬다. 물론 뭐 지금도 돈만 있다면 당장 백화점에 가서 이거저거 구입할지 모를 일이긴 하다. 하지만 형편은 그렇지 못하고 그런 걸 살 형편이 되지도 않는데 비슷하게 흉내낸 가품을 구입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형편에 맞는 에코백이나 예쁜 보세 옷들로 나름 초라하지 않게 날 꾸미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오래되다보니 이젠 에코백이나 예쁜 보세 옷들과 나름의 정(?)이 들어 내 눈에는 이제 그런 게 더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형편이 되지 않아 가족들과 해외가 아닌 동네 산책이나 국내 여행을 주로 다니지만 이제 그런 여행이 주는 정서에 익숙해져 그걸 선호하게 되었달까. 해외여행을 떠올리면 막막하고 시작도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느낌이 든다. 그냥 익숙한 곳에 가서 맛있는 걸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런 상황인데 얼마 전부터 언니가 명품 가방이나 스카프 등의 가품 사진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예쁘지? 물어보며. 당연히 나는 예쁘네 언니, 잘 어울린다 언니랑, 반짝반짝 참 예뻐 정도의 대답을 했다. 나와 성향이 다를 뿐 그게 틀린 건 아니니까. 왜 진짜를 살 형편이 되지 않으면서 굳이 가짜를 사서 진짜인 척 하는 건지, 다른 사람을 볼 때 그런 걸로 평가를 하는 건지, 자존감이 낮아 그런 걸 걸쳐야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지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부자라서 명품을 여럿 사서 모으고 하루하루 기분에 따라 골라 들고 다니는 형편이라면 이상할 게 없지만 그럴 형편이 아닌데 왜 굳이 비슷하게 흉내낸 걸 모으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를 좋아했으므로.

그녀는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나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손으로 직접 만든 뜨개 가방이나 시장에 산 꽃 무늬 치마도 선물해주곤 했으므로.


문제는 예쁘다 예의상 대답한 걸 듣고 그녀가 자꾸 명품의 가품들을 내게 주려고 한다는 거였다. 나는 싫다. 셀린느, 샤넬 등 명품과 다른 부분이 있을 가품들을 자꾸 내게 주려고 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싫다고 했더니 부담 가지지 말고 받으라고 해서 언젠가 가방 하나를 받아 그녀를 만날 때 한번 들고 나가고 이후 장롱에 처박아두었다. 버리지도 못하고 정말 난감한 마음이다. 이후에도 여러 차레 거절을 했는데 며칠 전에는 구찌 아니 가짜 구찌 목걸이를 주겠다며 또 사진을 보내왔다. 이번에는 조금 정색을 하고 받기 싫다고 했더니 그녀가 섭섭해하는 게 느껴졌다. 섭섭한 건지, 내가 고상을 떤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오늘 또 그녀는 내게 네잎 클로버 모양의 팔찌 사진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게 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것도 명품이라는데 나는 이름도 잘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고 순간 이번에는 정말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나를 공격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을 내어놓고 지내는, 내가 좋아하는 그녀인데 왜 이렇게까지 자신의 취향을 내게 권유하는 걸까?


선물은 상대가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게 아니었던가? 달라고 한 적도 없고, 싫다고 하는 걸 왜 굳이 내게 예쁘지 않냐고 자꾸 물어보고 주겠다고 하는 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그녀의 취향이라 생각하고 존중하며 예쁘다고 말해왔는데 이제 그러지도 못하겠다. 예쁘다고 하면 또 준다고 할 것만 같아 너무나 부담이 되므로. 나는 나의 공간에 가짜 명품 따위 없으면 좋겠다. 가격이 싸고 유명한 명품이 아니라도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나의 취향과 애정이 듬뿍 담긴 소품들로 나의 공간을 채우고 싶다.


적당히 받아서 처박아둘까 생각도 했지만 이제 그걸 떠나 싫다는데 강요하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배려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 화가 난다. 그녀와도 이제 그만 만날 때가 된 걸까? 하루하루 사는 것도 바빠 이런 것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드는 밤.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를 가장 응원하는 친구는 역시 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조금 쓸쓸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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