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향기 Aug 05. 2023

취미생활 하러 가자!

남편의 향기




남편은 회식날이면 귀갓길에 간식을 사 오곤 했다. 독박육아만도 억울한데 해맑은 표정으로 간식을 들고 오는 남편을 보면 어찌나 얄미운지. 싸게 샀다며 사 온 건 하필 치킨 같은 칼로리 폭탄 음식들이었다. 맛만 볼까 하다 다 먹어 놓고는 남편 때문에 다이어트가 안 된다며 다신 사 오지 말라고 쏘아붙이곤 했다.


시장 보러 가던 어느 날, 남편이 할인품목 코너에 가보자고 했다. 여러 번 구매해 본 경험상 꽤 쓸만한 제품들이 있다는 말에 속아주는 셈 치고 따라가 보니 꽤 요긴한 물건들이 보였다. 우유, 두부, 요플레처럼 수시로 먹는 게 40% 할인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할인품목은 팔다 남은 물건, 인기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우리 집은 우유 한팩을 사면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지고, 아침에는 밥대신 간편식으로 먹기 때문에, 장 보러 가기 바쁘다. 뭘 사야 할지 늘 고민이었는데, 할인품목 코너에 내 고민을 해결해 줄 녀석들이 보였다. 바로 먹을 건데 유통기한이 코앞인들 어떠랴.


이후 우리 부부는 밤마다 동네 마트, 정확히는 할인코너로 마실을 갔다. 오늘은 뭐가 있을까? 기대를 품고서.


어떤 날은 우유와 요플레처럼 딱 필요한 물건을 얻기도 하고, 초콜릿처럼 불필요한 간식만 있어서 허탕을 치고 나오는 날도 있다. 매일 달라지는 득템찬스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어릴 때 뽑기 하던 기분이랄까.


가끔 대왕 요구르트 같은 물건도 등장한다. 남편은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사자고 하고, 나는 몸에 안 좋다며 사지 말자며 의견이 안 맞기도 하는데, 웬만하면 남편 말을 들어준다. 득템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남편의 아이 같은 모습이 왠지 귀여워서.


'오늘은 또 뭘 먹어야 되나?' 혼자 하던 고민을 이제는 남편과 함께 한다. 어깨를 누르던 짐을 나누니 이리 가벼울 수가. 할인 코너 단골이 되면서 우리 집 식단은 이리 튀고 저리 튀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내 몸과 마음이 편한데.


무엇보다, 마트에 다녀오며 짧은 시간일지언정 남편과 하루동안 일어났던 소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집에서 보다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게 된다. 여름밤공기를 마시며 짧은 데이트로 하루를 마감한다.


이제 남편은 회식이 있는 날 귀갓길에 간식 봉지를 들고 오는 대신 전화가 온다.

"취미생활 하러 가야지!

10시에 마트 앞에서 봐"


취미생활 하러 가자는 말이 왜 이리 산뜻하게 들리는지, 요즘 부쩍 듣고 싶어지는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이자 연인, 때로는 웬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