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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향기 Aug 14. 2023

친구이자 연인, 때로는 웬수

남편의 향기



남편과 만난 지 20년이 흘렀다. 엊그제 만난 것 같은데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흐르다니. 마음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겉모습은 많이도 변했다. 함께 먹고 술 한잔 기울이는 걸 좋아하는 우리는 연인이 된 후로 남편은 20kg, 나는 10kg가 쪘다. 처음 만날 때 남편은 치킨을 잘 못 먹었었는데, 치킨 귀신이었던 나를 만나 치맥을 함께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동글동글해진 우리는 살면서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곤 했다.


남편은 나에게 다른 누구보다 친구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퇴근하면 서로 직장 이야기를 해주느라 바쁘다. 특히 내가 그렇다. 마치 대나무숲을 만난 양, 동료 직원때문에 불편했던 이야기와 업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둥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면, 남편은 찰떡같이 알아들어주고 자신의 생각을 넌지시 던져준다.


에 불편했던 마음이 가시기도 하고, 어쩔 인사이트가 팡 터질 때도 있다. 어쭙잖은 나의 글에 첫 독자가 돼주고, 때로는 빨간펜 선생님이 되어서 부족한 부분을 짚어주기도 한다.


요즘 우리는 더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새벽 5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서로를 깨워주고 화요일과 목요일엔 골프장으로, 수요일과 금요일엔 헬스장으로 간다. 골프장에선 서로의 스윙을 봐주고 헬스장에선 강사님의 말씀에 함께 작아지곤 한다. 쓴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더 나아지려고 애쓴다.


우리 사이가 친구이자 연인 같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육아와 살림에는 니탓내탓하며 아직 서툰 아이와도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끌려다니는 편이고, 남편은 아이들에게 엄한 편이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는 방식이 못마땅스러울 때가 많다. 남편이 아이들을 혼내면 내가 혼나는 기분이 든다. 조곤조곤 설명해도 충분히 될 것 같은데... 남편은 나 때문에 악역을 맡게 된다고 불평한다. 집안일은 또 어떤가? 남편은 건조기에 바로 꺼낸 빳빳한 빨래도 주름이 생기게 개는 능력을 발휘한다. 옷은 아무 데나 훌러덩 벗어놓고. 이럴 땐 웬수가 따로 없다.


지난달에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첫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정신줄을 놓고 종종 길을 헤매는 나와 달리 남편은 전사처럼 우리를 이끌고 다녔다. 비행기 발권도 척척, 간식 타이밍을 맞춰 아이스크림도 척척 사 온다. 일정이 끝나면 장인어른과 장모님 방에 가서 소담을 나누고, 새벽이면 장모님을 모시고 사우나도 다녀온다. 나는 영원한 며느리인데 우리 남편은 나의 부모님께 이미 아들이다. 이 모습에 또 웬수가 연인으로 바뀐다.


내가 남편의 연인이 된 건 아마 의 이런 모습 때문인 것 같다. 적응이 빠르고, 앞으로 돌진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 사는 동안 남편은 나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 주었고, 새로운 곳에 가게 해주었다. 그는 머뭇거리는 나의 발을 떼개 해주는 사람이다. 가끔은 준비가 안된 나의 등을 갑자기 떠밀어 황당하게도 하지만.. 그덕에 마흔에 고향 제주를 떠나 타향살이를 해보는 진귀한 경험도 하고 있다.




"또 어디 가는데??"

내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남편은 나에게 불안함과 설렘을 동시에 주는 존재이다. 마치 첫사랑처럼.

그가 나에게 딱 맞춤 정장 같은 사람이길 바라며 자주 투덜대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완벽한 사람은 다시 태어나도 없다는 걸 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좋은 점은 엄지 척해주며 살아가는 게 부부의 삶이지 않을까.

이러면서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웬수라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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