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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향기 Oct 05. 2023

집사가 될 줄이야...!

사랑이와의 만남


 살면서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내가 고양이 집사가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어릴 적 개를 키워본 적은 있다. 보통의 시골집처럼 밖에서 개를 키웠다. 누렁이를 삼대째 키운 적도 있다. 강아지가 태어나면 어찌나 이쁜지 몽실몽실한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개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동물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는데도 고양이는 예외였다.


고양이는 나에겐 어릴 적부터 무서운 존재였다. 깜깜한 밤에 나가면 야광 불빛을 쏘아대며 후다닥 도망가는 녀석, 떼 지어 다니며 싸움을 하고 울부짖는 녀석, 부모님은 길고양이가 나타나면 당장 내쫓으셨다. 부모님께서 고양이는 해로운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셔서 그런지 더욱 고양이를 피했던 것 같다.


 남편은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강아지를 키웠다. 강아지를 키워 보자는 남편의 권유에 도시에서 어떻게 강아지를 키우냐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개는 모름지기 밖에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가 자기도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동생 인형을 사주겠다고 하니 살아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의 동생 타령에 남편이 슬쩍 본심을 담은 아이디어를 냈다. 사람 동생 대신 반려동물 동생을 데려오자고. 딸도 귀가 솔깃하더니 아빠와 딸이 마음을 합쳐 졸라대서 어느덧 마음이 움직였지만 강아지는 목욕시켜야 하고, 산책도 시켜야 하고, 무엇보다 혼자 둘 수 없다는 말에 망설여졌다. 여유로운 아주머니가 되어야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우리 집 상황에 강아지는 안 되겠다고 했더니 이번엔 고양이 카드를 꺼냈다. 고양이는 배변 훈련을 해줄 필요도 없고 목욕도 시킬 필요도 없고 혼자서도 잘 논다고 친구에게 들었다며. 무서운 고양이를 키우라니? 기겁했지만 동생을 데려오고 말겠다는 둘째의 집념도 만만치 않았다.


아빠와 딸은 성향이 비슷하다. 하고 싶은 건 해내고야 만다. 어느 날 부녀는 나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고양이 한 마리 키울까? 두 마리 키울까?"


이날 기분이 좋았던 날이었던 것 같다. 부녀 공작단에 낚이고 말았다.


"두 마리를 어떻게 키워? 한 마리만 키워!!!"


 생각지도 못한 허가령에 신이 난 부녀는 바로 고양이 입양에 돌입했다. 고양이를 최근에 들인 지인에게 SOS를 요청했다. 이 분도 만만치 않은 추진력의 소유자라 바로 SNS로 입양 가능한 고양이를 알아봐 주셨다.


 며칠 후 새 식구가 될 고양이가 우리 집으로 왔다. 눈이 크고 흰색과 회색 털이 묘하게 섞인 이국적인 고양이였다. 우리 집 식구 중에서 외모는 제일 나아 보였다. 아이들은 고양이 이름을 '사랑이'라 지었다. 겁을 잔뜩 먹은 사랑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구석으로 내달았다. 다음 날 출근했는데 아이들이 사랑이가 사라졌다며 울면서 연락이 왔다. 서둘러 집에 가서 집안 곳곳 찾아보았지만 종적이 묘연했다. 한참 후에 캠핑용 가방 안에 숨어있는 사랑이를 발견했다.


 이름과 달리 시크하기 그지없는 사랑이는 경계심이 가득하고 어찌나 소리 없이 움직이던지, 어디 갔나 찾아보면 냉장고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고 가끔은 드레스룸 옷 속에 파묻혀 있기도 했다. 고양이를 찾아다니며 어느덧 사랑이에게 훌쩍 마음이 다가선 나를 발견했다. 고양이 눈이 신비롭게 보이고 울음소리는 어찌나 맑게 들리는지. 고양이는 점점 나에게 '고영희'님으로 바뀌어갔다. 내가 집사가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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