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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향기 Oct 06. 2023

집사라서 행복해!

딸랑이와의 만남


 사랑이가 새 식구가 되면서 집안에 활력이 돌았다. 남편은 고양이에게 본인을 "아빠"라고 호칭하며 하트가 뿅뿅 터지고, 둘째는 눈 빠지게 기다리던 고양이 동생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양이 입양에 무관심했던 첫째도 사랑이에게 홀딱 넘어갔다. 말이 별로 없는 편인 첫째는 할 말이 없을 땐 사랑이 이야기로 운을 뗀다. 

"엄마~ 사랑이 귀엽지?"


 시크한 사랑이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있으면 보란 듯이 벌러덩 드러눕고 조그만 머리를 비벼대며 사랑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혼자 책을 볼 때는 옆에서 친구가 돼준다. 강아지처럼 주인을 따라다니며 살랑거리는 애교는 없지만 고양이는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는가 싶다가도 어느덧 옆에 와서 온기를 주는 신기한 동물이다.


 사랑이와의 동거가 안정적으로 흐를 때쯤 잊지 못할 사건이 생겼다. 온 가족이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식탁 밑에서 사랑이가 뭔가 목에 걸려 캑캑거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놀라서 다가가보니.. 

헐~! 실이 딸린 바늘을 집어삼켜 목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지켜보는 것만도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급히 사랑이를 데리고 동물 병원으로 달려갔다. 수의사님은 목을 겨우 넘긴 바늘이 장기에 박혀 있어 급히 수술을 해서 빼내야 한다고 하셨다. 수술만 하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웠다. 근데 수술 비용을 듣고서 또 한 번 놀랬다. 후덜덜.. 75만 원이나 든다고 했다. 반려동물은 보험이 안 된다는 걸 이때 처음 깨달았다.


 동공이 흔들리던 찰나 병원에 걸려있는 벽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ㅇㅇ고등학교에서 증정했다는 글씨가 보였다. 남편이 졸업한 고등학교였다. 남편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벽시계를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남편은 눈빛의 의미를 바로 알아채고는 수의사님께 깍듯이 인사를 했다. "선배님~ 저, ㅇㅇ고등학교 ㅇㅇ회 졸업생입니다." 수의사님은 미소를 띠며 바로 말을 놓으시더니 엑스레이비를 시원하게 깎아주셨다. 말 한마디에 십만 원이 어딘가? 남편에게 엄지척해주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사랑이는 며칠 동안 입원 신세를 졌고 아이들은 사랑이를 보러 병원에 가자며 졸라댔다. 내 인생에 고양이 병문안을 다니게 될 줄이야... 사랑이가 퇴원한 후 고양이가 삼킬 수 있는 실처럼 기다란 물건이 집에 굴러다니지 않도록 바짝 신경을 쓰게 되었다. 일상의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즐겨 입는 옷은 무난한 검은색이 대부분이었는데 고양이 털이 티 나지 않는 밝은 옷으로 탈바꿈했다. 본의 아니게 회색 인간으로 진화했다.


 사랑이가 세 살이 될 무렵, 아빠와 딸은 사랑이가 혼자 있는 게 안타까워 보인다는 소리를 했다. 사랑이가 쓸쓸해 보인다며 둘째를 입양하자는 부녀의 합세 공략이 시작되었다. 빗방울은 바위를 뚫는다는 걸 또 실감했다. 사랑이 하나도 충분하다고 반대하던 내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우리 고양이만이 아닌 길고양이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영종도에 있는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주무관님 한 분이 옆집에서 고양이를 구조했다고 하셨다. 어미는 사라지고 여섯 마리 새끼 고양이 중 세 마리만 살아 있었다고 했다. 세 마리 고양이 입양처를 찾고 있다고 하셨다. 사진을 보니 마음이 심쿵했다. 어찌나 짠해 보이는지.. 사람과 고양이 간에도 인연이 있나 보다. "한 마리 입양할게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둘째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눈은 노랗고 갈색과 검은색이 섞인 줄무늬 패턴에 하얀 양말을 신고 목도리를 한 것처럼 보이는 고양이였다.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스타일이라 정감이 갔다. 사랑이와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는데, 처음엔 낯선 존재를 향해 으르렁거리던 사랑이도 시간이 흐르자 적응해 나갔다. 서로를 핥아주고 아껴주는 남매가 되길 바랐지만 아직도 서로 티격태격한다. 아들과 딸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나에겐 화합 역량이 있는데 왜 남매들에겐 안 통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사는 우리 집은 늘 온기가 흐른다. 사춘기로 들어선 아이들과 대화거리가 없을 때도 고양이를 주제로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퇴근하면 "엄마~ 아빠" 하며 반겨주던 아이들 대신 고양이가 먼저 나와 반겨준다. 낮잠을 자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어릴 적 공포의 대상이었던 고양이는 나에게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되었다. 조용히 말없이 쳐다보는 모습에 위안을 얻는다. 한결같은 순수함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 모습이 보고 싶어 찾아다니고 따라다니는 진정한 집사가 되고 말았다.

우리 집 보물. 사랑아~ 딸랑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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