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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향기 Oct 07. 2023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사춘기 아들과 함께 커간다.


우리 아들이 달라졌다. 작년 월드컵을 보면서부터 축구에 관심을 갖더니 지난겨울부터 축구에 빠졌다. 한주에 삼일 정도는 풋살장에서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축구 연습을 한다. 혼자서 아파트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헬스장에 가서 다리 운동과 턱걸이도 한다. 학교 축구 동아리에도 스스로 가입했다. 왜 하냐고 물으니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란다.


아들은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부모 마음에는 운동을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아들이 다섯 살이 되자마자 태권도 학원에 보냈는데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태권도 심사가 있는 날에 갑자기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당황스럽게 했다. 아들이 아홉 살이 되자 유소년 축구클럽에 보냈는데 활발하게 움직이는 또래 아이들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속이 타들어 갔다. 우리 아들은 운동 쪽은 아니구나 싶었다. 실망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운동을 안 한다고 해도 정상 체중이라면 걱정을 별로 안 했을 텐데, 4.16kg 우량아로 태어난 아들은 신체검사를 하면 키와 체중이 상위 1%였다. 건강에 이상이 올까 봐 염려되었다. 학교생활을 즐기지 않는 것도 예민한 성격도 살찐 외모 때문인 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식단 조절도 해봤지만 먹는 걸 좋아하는 성장기 아이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걷기, 계단 오르기, 등산, 줄넘기, 배드민턴 등 여러 운동을 시도했지만 지속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웬걸! 엄마의 갖은 노력에도 꼼짝달싹하지 않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스스로 운동을 시작했다. 축구엔 눈곱만큼도 관심 없던 아들이 지난 월드컵 때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패배하자 눈물을 글썽였다. 이때부터 홀로 축구연습 삼매경이 시작되었다. 정식으로 축구를 배워보고 싶어 했지만 아쉽게도 중학생을 받는 축구클럽이 없었다.


운동과 더불어 식사량도 조절하더니 지난 설날 무렵 90kg 정도였던 체중이 5개월 만에 75kg로 줄었다. 아들이 5학년 때는 나와 키재기를 했는데 2년 새 폭풍 성장을 하더니 아빠보다 키가 커졌다. 위아래로 쭉쭉 길어지더니 아들의 불룩 나온 뱃살은 어느새 사라지고 살에 파묻혔던 이목구비가 살아났다. 아들을 오랜만에 본 지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들이 운동을 하게 된 건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도 한몫했다. 5학년 때 처음 수학학원에 보내려고 학원가에서 테스트를 받고 들어갔는데, 실력에 맞는 수업이 낮에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밤 7시 40분 타임 수업을 들어야 했다. 집에 돌오면 밤 10시가 넘었다. 공부보다 운동이 필요하다 싶으면서도 쉽사리 학원을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들의 수학 실력은 늘었지만 체중도 늘어났다. 담당 선생님이 바뀌면서 아들이 학원을 그만두고 싶어 하자 이참에 낮 타임이 있는 동네 수학학원으로 옮겼다. 드디어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되었고 아들은 그 시간을 축구 연습 시간으로 채워나갔다. 비록 아들의 수학 실력은 퇴보했을지라도 취미를 갖고 건강을 챙기게 된 지금이 훨씬 만족스럽다.


아들을 키우면서 늘 노심초사했다. 비만으로 병이 날까 봐, 외모 콤플렉스가 생기진 않을까. 부모의 앞선 걱정과 조바심에 운동하기 싫다는 아이를 흘겨보기도 하고 등을 떠밀기도 했다. 아이가 스스로 축구장으로 가겠다고 하는 날이 오다니. 안 간다고 떼쓰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하루쯤 쉬면 안냐고 애원하는 쪽은 부모가 되었다.


축구가 그리 재밌을까? 땀에 푹 젖은 아이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요즘 골프가 잘 안돼서 흥미가 급속도로 떨어졌는데 아들은 슬럼프가 오질 않나 보다. 다이어트를 선포하고 나서도 음식 앞에서 한없이 약해져 체중 변화가 별로 없는 어미는 홀쭉해진 아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


기다리면 싹이 튼다는걸, 진심과 재미가 더해지면 목표를 넘어선다는 걸, 아이에게 한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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