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중이긴 합니다만...
"맥주 한잔할래?"
남편이 가볍게 나에게 말을 던진다. 몇 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맥주 한 잔?"이란 말에 오늘도 넘어가고 만다. 요즘 나는 다이어트 중이다. 다이어트 챌린지 모임과 PT 강사님과의 식사 인증 채팅창에 맥주를 버젓이 올린다는 건 민망한 일이다. 대체 어쩌자는 거냐고 느낄 것이다.
알고는 있지만 맥주캔을 따고 만다. 미안한 마음에 맥주 사진은 빼고 음식 사진만 올릴 때가 많은데 나의 행각을 옆에서 지켜본 남편은 사기치고 있다며 놀려댄다. 고기는 참을 수 있지만 맥주는 참기 힘들다. 그 결과 다이어트 시작한 지 몇 달째인데도 내 몸무게 변화는 지지부진하다.
남편과의 맥주 한 잔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 부부는 한 공간에 있어도 각자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보면서 따로국밥일 때가 많다. 맥주를 마시자고 건네는 말은 따로국밥을 멈추고 마주 보자는 뜻이다. 나는 남편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만난 지 20년이 된 남편은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마음대로 말을 지껄여도 돌아설 때 뒤통수가 당기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하다 보면 머리는 가벼워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에게 맥주 한 잔은 코칭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어찌 끊겠냐고..!
우리 부부는 가끔씩 집이 아닌 동네 호프집이나 동네 수변 공원에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인다. 부지런히 돌리던 일상의 쳇바퀴 페달을 멈추는 순간이기도 하다. 부부만의 밤마실이자 짧은 데이트인 셈이다. 세월이 흘러 흰머리가 늘어나고 주름이 생긴 부부는 동지애가 가득한 중년의 연인으로 재탄생했다. 맥주를 함께 마시며 아이들이 잘 자라준 걸 감사하게 되고 그동안 우리도 고생했다고 서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함께 미래를 꿈꾸고 서로 하고 있는 일을 응원해 주기도 한다.
어떤 날은 내가 맥주가 당기고, 어떤 날은 남편이 당기고, 어떤 날은 서로 눈이 맞은 듯 함께 당겨서 맥주를 마시는 날이 마시지 않는 날보다 많기도 하다. 맥주는 우리가 서로를 아직 좋아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도 같다. 함께 좋아하는 대상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행복이다. 하필 그게 술이라 20년 세월 동안 우리는 함께 동글동글해져서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둘 다 다이어트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맥주를 끊기는 힘들 것 같다.
맥주는 다이어트에 적이지만 심리적 건강 측면에서 나에게 효과가 크다. 나의 말문을 술술 트게 해 주고 남편과 우정과 애정을 다지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삶의 한 챕터마다 멈춰 서서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과 공간을 선사해 준다. 그 생각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기도 하고 미래로 확장되기도 한다.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할 수 있다고 본다. 고로 맥주 한 잔은 포기할 수 없기에 사랑과 우정을 담은 맥주 한잔을 살포시 더해가며 슬기로이 다이어트를 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