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그리워 가고픈 마음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여기서 고향까지는 어림잡아 만이천리, 기차로 40일을 왔다고 했다 서당 회초리만하던 묘목이 고개를 들어 한참을 올려다볼 만큼 자랐다
우즈벡에서의 시간을 마무리짓는 몇일 안남은 타슈켄트에서 아리랑 요양원은 하루일정이었다 말벗을 해드리고 화투나 한판 쳐드리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고 요양원의 하루를 마칠무렵 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여산 송씨였다 우즈벡 일정을 함께 보내던 지인중에 한분이 송씨였고 우리엄마가 송씨였기때문에 본의 아니게 엄마가 여산송씨인걸 말했었는데 할머니도 송씨여서 말동무 해드리다 여산송씨의 접점을 만나게된 것이었다 할머니는 송 마리아 고려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나를 굉장히 반가워했다 나는 송씨가 아니라 신씨임에도 '친척'이라는 표현을쓰시면서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어쩌다가 우리 친척이 이 먼곳까지 왔느냐며' 정작 본인이 이주하게된 삶의 굴곡 대해서는 잊어버리신듯, 나는 비행기를 타고 몇시간 만에 여기 왔지만 할머니는 40일이 걸렸고 또 80년도 넘게 흘렀는데 나는 정작 우리 엄마가 여산송씨 몇대손인지도 몰랐다 물속에 사는 풀의 가는 잔뿌리와 물없는 사막풀 긴뿌리가 이렇게...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저희는 내일 한국으로 갑니다"
"내일 아니 오오?"
귀가 어두운 할머니를 위해 조금더 크게 말해야할것같았다
"내일 한국가는 비행기를 타야되요 건강히잘 계세요"
" 조심히 살펴가오"
"조심히 살펴가오 먼길 와줘 고맙소"
바람 앞에 촛불같던 나라로 인해 얻은 고난과 핍박의 시간이 우즈벡과의 축구를 한국이 승리한 오늘과 겹쳐졌다 어느 이별이 가슴에 안남겠냐만은...
할머니 부디 강건하소서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