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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천경마 Jul 07. 2021

할 수 있을 때했었어야 했다

20170727

스리랑카에 있을 때 수도인 콜롬보에서 임지인 암파라로 갈 때 야간버스로 보통 여덟 시간 정도가 걸렸다 스리랑카 제2의 도시인 캔디까지 보통 두 시간 반 정도 그리고 핸드폰도 잘 안 터지는 굽이굽이 산길을 한 시간 반 정도 가게 되면 마치 스리랑카의 동쪽이 한 번에 다 보일 것만 같은 절경이 펼쳐지는데 길위가 단조로운 스리랑카에서 갑자기 나타난 탁 트인 절경은 장관이다


잠들기 어려운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도 어렵사리 잠을 청하다가 고개가 좌우로 흔들리며 차벽을 치게 되면 처음에는 자리를 고쳐 잡으며 얼마큼 왔나 꼭 눈을 떠서 밖을 확인했는데 시간이 지나 스리랑카에 익숙해지고 길에 익숙해지고, 꼭 눈을 뜨지 않아도 잠결에 얼마나 왔는지 손목에 있는 시간을 슬쩍  보고 위치를 대충 가늠해보고는 다시 잠드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슬프지 않다  


18. 꼭 열여덟 번의 굽이고 코너다 아래에서 위로 급하게 올라가는 승강 도로이기 때문에 경사는 거칠고 버스는 매연을 내뿜으며 한 시간을 달려도 지도에서 이루어지는 수평적인 이동인 미미하기 그지없다 한굽이 한굽이를 돌 때마다 수도로 간다는 기대감으로 올라가는 고도만큼 기분이 들뜰 때도 있었고 임지로 돌아오는 한굽이 한굽이 내려갈 때마다 다시 현장에서 아이들과 복작대야 한다는낮아지는 고도만큼이나 공기가 무거워지는 때도 있었다


이 길이 어떻게 보면 참 예쁘다 잠시 차를 세워 넓게 트인 동쪽을 보고 있으면 저 한참 멀리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그보다 가까이 네 시간을 달리면 임지인 암파라가 있었으며 그리고 내 옆에는 야생 원숭이들이 '뭐 얻어 거리는 거 없나' 하면서 나를 주시하고 있는데 3년을 살면서 이곳을 수도 없이 지났을 텐데도 사진 한 장을 남기지 않았다


그게 지금 너무 후회가 된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원 때는 '앞으로도 수없이 지나갈 길이다' 라면서 사진을 안 찍었고 코디할 때는 '언젠가 한 번은 찍겠지'라는 막연함으로 그리고 익숙해진 피곤함으로 잠들어버림으로써 그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론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 사진을 찍는 데는 크게 어렵지 않다 스리랑카에 가서 다시 그곳을 찾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진에 대해 미련이 남는 것은 정확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었던 그때의 '시간'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리랑카에 살면서 제이슨 무라즈 노래를 엄청 들었다 호주에서 쓰던 고물 3G 핸드폰에 제이슨 무라즈 노래를 넣어서 어디를 이동할 때 낚시할 때 꾸준히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제이슨 무라즈 노래는 스리랑카를 생각나게 하고 맨날 듣던 '93 million miles'  가사 역시 '너는 언제나 집에 돌아올 수 있다'는 타향에서 고독의 시간을 보내는 봉사자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말이었기 때문에  듣고 또 들었다 타향에서 무라즈는 정말이지


열여덟굽이 승강타... 그때도 제이슨 무라즈 노래와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이었다 주말을 콜롬보에서 보내고 월요일 평일, 화요일부터 다시 공휴일인, 수업을 제끼기 참 매력적인 그때도 나는 일요일 밤에 내려가서 월요일 수업을 하고 다시 올라와서 술을 마셨다 처음에 장거리 버스는 구토가 올라오는 거부감이었는데 나중에는 사색을 하고 생각을 깊게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책을 읽어보려고도 했는데 잘 안 오는 멀미가 오게 되어 닌텐도 DS 고스톱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시간도 많았다 


시간이 흘러 아프리카에 있다 스리랑카에서 한국은 6천 킬로 우간다에서 한국은 만 킬로가 넘는다 물론 지구에서 달까지는 9천3백만 마일이 넘는다 


나는 언제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스리랑카에 사진을 찍으러 꼭 한번은 돌아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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