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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는 것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by 바람꽃

점심시간, 내가 관심 갖는 분야에 대해 직원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할 말도 많아지고 정보도 많이 얻게 된다. 나는 요새 글쓰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직원의 동생이 글을 쓰고 있고 책도 몇 권 발간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뜻하지 않은 이야기에 너무 반갑기도 하고 궁금해서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했다. 작가는 '문하연',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를 소개해줬다.


근처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으면 희망도서로 신청할까 싶어 검색했더니 다행히도 마침 대출 되지 않은 책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남아 부랴부랴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처음 책을 접하는 순간부터 왠지 기대가 많이 되었다. 나 역시 작가처럼 내 주변에 일어나는 단편적인 일상을 나누는 글을 쓰고 있는데다가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부터 충분히 함께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는 아우라를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 소개의 글을 보니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글 중 조회수를 많이 받은 작품 중에서 일부를 모아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음악, 미술에도 관심이 있어 클래식과 그림에 관련된 책을 발간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드라마 대본과 시나리오에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세대인 듯한 작가에게서 힘들고 지친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애쓰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어 내 안에 잔잔한 위로와 함께 상큼한 비타민 한 병 원샷으로 들이킨 기분이다.


가슴 절절한 아픈 가정사를 포함해서 함께 살고 있는 애완견, 친구들 이야기, 직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에 대해 친근하고 다정다감하게 서술하였는데 마치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함께 마주 앉아 얼굴보며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졌다. 쉬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함께 웃고 울다가 가슴 잔잔한 여운만을 남긴 채 책을 덮었다.

책 안에는 다양한 정보도 많았다. 읽을 만한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음악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가끔 작가가 좋아하는 곡을 추천해주면 바로 검색해서 들어보기도 하고 당장 찾아보기 힘든 책이나 작품은 메모해서 나중에 꼭 찾아보기도 한다. 왠지 작가와 한 발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 재미가 더 쏠쏠하고 덤으로 얻게되는 또 하나의 기쁨으로 여겨진다.

특히,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닌 내가 아시는 분의 친동생이라고 하니 가족이야기를 읽을 때면 지인의 모습이 떠오르며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냥 무조건 믿고 보는 책이라고나 할까?!


p141

「다행스럽게도, 청춘이 가니 자유가 왔다. 이십 대에는 직장생활 하느라, 삼십대에는 아이 둘을 키우며 일하느라, 사십 대 중반까지도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사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팽팽하기만 하던 삶의 장력이 느슨해졌다.(중략) 청춘과 자유를 맞바꾼 것 같다.」


100% 공감되는 문구이다. 작년에 함께 사시던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아이들도 모두 타지에 있다 보니 남편과 나, 우리 둘만의 공간과 평생 꿈꿔오던 자유?를 얻었는데 막상 지금 나의 현실은 눈도 잘 안보이고 어제의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몸도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수시로 들락거리며 삐죽삐죽 솟아나오는 흰머리를 관리해야 할 만큼 나이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엄마가 그렇듯 빛나는 나의 청춘 역시 제대로 반짝거려보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보냈지만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절대 'NO'다.

‘잃어버린 나의 청춘을 돌려도~’ 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고 나를 위해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들이 더 없이 좋다.


p142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주름진 얼굴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서 손대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엔 물 흐르지 않도록 가지 않으며, 나이에 맞는 옷을 입고 오십 넘어 미니스커트가 롱스커트로 바뀌고, 등산복이 일상복이 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마도 무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도, 나자신에게도.


나에게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더 잘하기 위해, 뭔가 더 열심히 하기위해 지쳐가는 정신과 체력을 억지로 끌어 올리며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 이대로! 조금 손해보더라도 마음은 비우고 욕심은 버리고, 아프면 아픈대로, 뛰는 것 보다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걷는 연습을 하고 내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면서 여유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아직도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고 빡빡 우기면서 밤새도록 웃고 떠들며 '난 아직 팔팔하다~'고 생색내고 싶지만 이제는 모두 욕심이고 부질없는 객기?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나이를 먹으니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들이 확연히 구분되어짐을 온몸으로 절실히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지치지 않고 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조금만 더 욕심을 내자면, 좋은 글을 써서 더 많이 나누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좋은 성과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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