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막바지에 이르면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할 예쁜 크리스마스가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즐겁고 기분 좋은 이미지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으면 이미 한 달 전부터 온 동네가 각양각색의 트리로 반짝거렸을테고 거리마다 신나는 캐롤송이 까만 밤을 환하게 울려대고 있을 터였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데 나 역시 기독교는 아니지만 나이를 먹었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을지 은근히 기대하면서 괜시리 기다려지는 날들 중 하나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푸른 소나무 트리' 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작은 시골에는 트리를 만들 소품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12월이 되면, 인근 들이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르디 푸른 소나무를 일부러 구하러 다녔다. 어린 마음에도 공동묘지가 있는 뒷산을 혼자 가기는 쉽지 않으므로 바쁘신 엄마를 졸라서 20여 분을 걸어 소나무를 직접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거의 내 키만 한 소나무 가지를 겨우겨우 꺾어 어깨에 메고 끌고 왔던 것 같다. 마당 한구석을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던 오래된 화분에 소나무 가지를 세우고 중간크기의 돌로 고정을 했다. 그리고 낡은 장롱 위 맨 구석진 곳에 1년 동안 잠들어 있는 빛바랜 속옷 상자를 조심히 꺼낸다. 상자 안에는 겨울이 될 때마다 하얀 눈송이와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거의 모형만 유지하고 있는 몇 개 안 되는 장식품들이 내가 꺼내주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장식 볼 몇 개와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등 듬성듬성 수술이 떨어졌지만 트리 장식에는 여전히 효과 만점인 반짝이 줄을 서로 교차해서 걸어놓고 누렇게 바랜 솜뭉치와 짝을 잃은 구멍난 양말도 하나 추가하면 끝!
그 시절에는 꼬마전구가 없어서 당연히 솔방울이 대신했다. 방문을 열면 겨울 내내 어린 꼬마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던 푸른 소나무 트리가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생생하다.
- '산타할아버지' 다!
어둠은 칠흑처럼 짙었으나 밤새 내린 함박눈으로 빛이 반사되어 누군가가 지나가면 그림자가 보일 것만 같은 고요한 새벽에, 멍멍이 백구가 진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요란하게 짖어서 비몽사몽 간에 '도둑이 왔나?' 걱정하며 꿈속을 헤맸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게으른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떠보니 머리맡에 작은 선물이 놓여있었다. 아쉽게도 아무리 기억해보려고 해도 그때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도통 기억이 안난다. '우리 집 안방에는 굴뚝이 없는데 어떻게 들어오셨을까?' 궁금해하면서도 잊지 못할 감격에 휩싸인 그 한 번의 추억 때문에 한동안은 분명히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었었다.
- '스릴 영화' 다!
중학교 때, 호기심에 잠깐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성탄절 예배를 준비하면서 성가 연습도 하고 커다란 트리도 만들며 친구들과 나눠 가질 선물을 준비했던 즐거운 추억이 아련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이 더 선명한 것은, 저녁 늦은 시간에 외출하는 것을 절대 싫어하셨던 아빠의 감시를 피해 주인도 몰라보고 최선을 다해 짖어대던 우리 집 멍멍이 백구를 겨우 진정시키면서 발소리와 숨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한발 한발 내딛었던 나의 발걸음들이 스릴있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 같았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한밤중에도 등에 식은 땀이 날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던 순간이어서 지금까지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 '나의 생일' 이다!
주민등록상 나의 생일은 12월 25일이다. 물론 진짜 생일은 음력 12월 25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일을 알려주면 정말 좋은 날이라며 왠지 축복이 가득할 것 같고 기억하기 쉬워서 생일 때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을 것 같지만 사실 학교 다닐 때 나의 생일은 음력으로나 양력으로나 모두 방학에 섞여 있어서 친구들과 제대로 생일 잔치를 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더군다나 시집와서도 시아버님 생신이 내 생일 전날인 음력 12월 24일 이어서 처음에는 대부분 시아버님의 미역국을 그대로 먹기도 했고 시아버님 생일 잔치에 대충 섞이는 분위기였다. 철이 없을 때는 조금 서운하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지만 친정부모님, 시부모님이 2년 사이에 모두 돌아가시고 나니 지금은 그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주는 가족들이 곁에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가는 해를 아쉬움 없이 잘 보내고 다가오는 새해를 새 마음으로 잘 맞이하고픈 나만의 상징적인 의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크든 작든 해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꼬마 전구와 반짝이는 소품들로 정성스럽게 꾸민 트리를 준비한다.
지금은 트리도 소품도 너무나 좋은 것들이 많지만 어린 시절 내가 고생해서 직접 만든, 마당 한 켠을 찬바람 대신 따스하게 지키고 있던 푸른 소나무 트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의 어린시절의 크리스마스는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날들은 아니었지만 반짝이는 트리와 소소한 추억들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아름답던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잔잔하고 애틋한 나만의 흑백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