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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의 겨울나기

by 바람꽃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는 나의 발소리와 내 차의 엔진소리를 기억하는 삼색 길냥이가 있다.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출근하기 위해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거나 퇴근한 후 주차장 입구로 내 차량이 들어서면 멀찌감치에서 살짝 모습을 보인다. 나의 출퇴근 시간을 대충 짐작하고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가끔 외출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도 나타나는 걸 보면 분명 나의 소리를 기억하는 눈치였다.


그런 길냥이를 마주 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잊고 있었던 어릴 적 기억이 문뜩 떠올랐다.

아빠가 퇴근하실 때면 마당 안에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는데 TV를 보다가도 어렴풋이 어디선가 낯익은 엔진소리가 느껴지는가 싶어 쫑긋하고 귀를 기울이면 아니나 다를까 아빠의 자동차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나를 기다리는 길냥이도 내가 아빠의 차 소리를 느낌으로 먼저 감지하는 것처럼 귓가를 스치는 익숙한 느낌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행여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세라 한껏 몸을 낮춰 숨을 죽이고 숨어있으면서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내 근처에서 어슬렁거릴 때면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밤새 어느 곳에 머물러 쉬다 왔는지 털도 까칠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한밤중 얼어붙을 것만 같은 까만 추위를 이겨내고 살아 내기 위해 가끔씩이라도 모습을 보이면 그마저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만치 떨어져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은 당연히 '춥고 배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는 절절한 신호 같아 한쪽 구석에 준비해 둔 종이 그릇 가득, 준비해 온 사료를 한 알도 남김없이 털어준다.


살을 에는 듯한 시린 바람을 피해 어느 구석에 기대어 추위를 이겨내는지 얕은 걱정을 뒤로하고 허기진 배라도 따뜻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료를 챙겨줬었는데 이 녀석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3년 정도 되는 것 같다. 항상 혼자 다녀서 무척 외로워 보이는데도 녀석은 절대 곁을 내어주진 않는다. 고독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 가까이 다가서려 하면 여전히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간 만큼 저만치 멀어져 간다.

한동안 보이지 않을 때는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내심 걱정했는데 다시 나타나서 무척 반가웠다.


동네 길냥이들에게 사료를 꼼꼼히 더 잘 챙겨주시는 슈퍼마켓 여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고양이들도 세대교체를 한다고 했다. 힘 센 길냥이가 나타나면 힘이 약한 길냥이는 할 수 없이 자신의 터를 내어줘야 하고 그대로 동네에서 쫒겨난다고! 길냥이 무리에서도 어쩔 수 없는 약육강식의 모습이 느껴져 마음이 불편했다.


싱싱한 생선도 육고기도 전혀 관심이 없는 우리 집 냥이는 입맛이 너무 까다로워 가끔 애완동물 가게에서 보너스로 챙겨주는 간식 역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 저것 모아 길냥이 사료에 하나씩 얹어줬더니 '웬 떡인가?'하고 너무나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간식이 먹고 싶어 더 자주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가끔 눈이 마주쳤을 때 챙겨 줄 간식이 없으면 괜시리 미안하기도 했다. 할 수 없이 요즘은 우리 냥이 간식을 살짝 빼돌려서 하나 둘 챙겨주기도 한다. 우리 냥이에게도 간식을 매일 챙겨주는 것은 아니지만 똑같은 고양이로 태어나서 너무나 비교되는 삶을 살고 있는 동물들 조차 우리 인간의 모습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아 마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하루, 이틀 보이지 않으면 이제는 내가 궁금해진다. 어디 쓰러져 있지는 않은지, 행여 다치지는 않았는지, 밤새 추위는 잘 피했는지! 갈수록 날은 더 많이 추워지는데 하루 한 끼만이라도 든든히 먹고 따스한 햇살에 온기를 느끼며 그 순간 만큼은 아무 걱정없이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래본다.

가끔 운동삼아 지나는 골목 한 귀퉁이에 어느 누군가가 길냥이를 위해 준비 해 둔 빈 밥그릇들이 세찬 바람과 모진 발길에 채여 힘없이 나뒹굴지 않길 바라며 남은 겨울도 따뜻하고 배고프지 않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오늘도 간식의 유혹을 기억하며 내내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있을 길냥이를 위해 우리 냥이 간식통을 슬쩍 뒤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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