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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휴가

둘째 아들 첫 휴가

by 바람꽃

사나운 눈이 밤새 까만 거리를 소리없이 할퀴어 대고 동장군이 한창 기승을 부릴 무렵, 군대 간 둘째 아들이 처음으로 휴가를 나왔다. 몇 주 전에 당일 외출이 가능하다고 해서 경기도 안산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우리 부부가 다녀온 터라 얼굴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장시간 기차를 타고 내 직장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는 까까머리 아들을 다시 보니 더욱 반가웠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ROTC 장교 임관을 앞둔 막내딸도 겸사겸사 늦은 저녁에 대구에서 내려왔다.


남편은 최근 얼굴에 수포 같은 것이 생겨 병원을 갔더니 '대상포진'이라고 했다. 마침 며칠 동안 병가를 내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큰 애 빼고 식구들이 오랜만에 모이니 내가 출근하는 동안 남편은 하나도 안 아픈 듯 아이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시장과 마트에 들러 수육과 육회용 고기, 촌닭 등 애들에게 챙겨 줄 먹거리들을 분주하게 준비했다. 그나마 남편이 함께 있어서 밥도 같이 먹고 서로 심심하지 않겠다 싶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퇴근해서 집안 분위기를 보아하니 서로의 시간을 보내는 스타일이 각자의 휴가 즉 '따로국밥'인 것 같았다.

남편은 평소 습관대로 붙박이 농짝처럼 거실 의자에 앉아 유튜브만 쳐다보고 있고 아들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밤새 얘기하다가 눈뜨면 또 나가서 다른 친구 만나고. 정작 휴가받은 5일 동안 거의 밖에 있어서 가족이 함께할 시간이 없었다.

애당초 계획은 하루 휴가를 내고 아이스 스케이트장에 다 같이 가자고 딸이 먼저 제안을 했는데 남편도 몸이 좋지 않아 시큰둥하고 말았다.

딸은 그래도 식구들과 뭔가를 함께 해보려고 계속 시도했는데 막상 무엇을 할지 얘기를 나누면 의견이 엇갈려서 마음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나도 평소에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직장에서 업무에 시달리고 난 후라 영화관에 간다든지 아니면 집에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을 원하는 반면, 딸은 탁구나 볼링 등 몸 쓰는 활동을 하고 싶어 했다.

둘째는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가 '집에 있으면 심심하다'며 거의 매일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정해 놓은 것 같았다. 남편은 여전히 '환자' 임을 강조하면서 소파에서 벗어나기를 싫어했다.


이런 상황에서 딸도 식구들이 모두 모여 같이 시간 보내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친구집에 가거나 아빠 차를 빌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약속을 정했다.

나는 이왕이면 잠깐이라도 다 같이 탁구를 치자고 꼬셨는데 아들이 계속 밖에 있어 짝수가 안 맞아서 결국 못 했다. 아들은 복귀하는 날도 늦잠을 잤는지 핸드폰 충전기와 아이팟도 빼놓고 갔다.


문득 ‘이제는 아이들과 노는 물이 다른 건가? 아니면 서로 양보가 없어서 그런건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의 핑계를 대자면, 나이를 먹으니 이제는 저녁 약속이나 활동도 별고 없고 퇴근하고 나면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평소 습관이 되었다.

거기에다가 남편도 아프다고 꼼짝 않으려 하고 나도 피곤하기도 해서 저녁에 나가기가 망설여지는 점도 있었다. 특히 서로 하고 싶은 게 달라서 의견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평상시에도 애들 있으면 먹을 거 잘 챙겨주고 하고 싶은거 말리지 않고 불편함 없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보통 쉬는 날이면 차 타고 바람 쐬러 가거나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애들은 밤새 깨어있다가, 늦게 일어나서 대충 먹고 친구들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분위기다.

TV 채널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은 온통 정치나 뉴스 등에 관심이 많지만 애들은 '저 프로그램이 뭐가 재미있어서 볼까?' 싶은 채널을 좋아한다. 이런 걸 세대차이라고 하나? 한 가족이어도 '서로의 취향과 원하는 것이 참 많이 다르다' 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딸은 이틀 정도 더 자고 다시 대구로 올라 갈 예정이라는데 지나가는 말로 또 묻는다.

“오늘은 탁구 칠 수 있어?”

“잉? 오늘은 월요일이라 엄마 아빠 기타 동호회 가야 하는데...”

동호회도 연말과 연초에 쉬어서 거의 한달 만에 모이는 건데 또 빠지기도 애매하고!


그래서 결론은? ,

'뭣이 중헌디?!'

할 수 없다. 집에 잠깐 머물러 있는 딸을 위해서 아빠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자갸~~~

나 오늘 기타 연습 안해서 안 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못 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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