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구야 보고싶다~~~
4월 초부터 한 달 내내 심하게 아팠다. 처음에는 계속 기침하고 열이 나서 '감기인가?' 생각했는데 귀에서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몸에서 계속 이상 신호를 보냈지만 주말에는 친정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3주기 행사가 있어 친정식구들을 오랜만에 만난다는 기분에 들떠 대충 감기약만 먹고 가볍게 받아들였다.
평일에는 통기타 동호회도 가야 하고 요즘 내가 제일 관심 있어 하는 수채 캘리그라피 수업도 있었으나 많이 망설인 끝에 모두 결석하고 그냥 쉬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녔다가 더 아플까봐 몸을 사렸는데 가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 작은 일들도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며칠 후, 직장에서 추진하는 2박 3일의 제주도 워크숍을 앞두고 전날 밤까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이미 가기로 약속해놔서 갑자기 취소하기도 미안하고 무엇보다 '제주도'여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차피 집에 가만히 누워서 쉬는 스타일은 아니므로 죽을만큼 아파도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가까운 지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쪽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몇 번이나 ‘안 갔으면 좋겠다’는 티를 팍팍 풍기는 남편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며 ‘안 아픈 척, 괜찮은 척’ 힘겹게 버텼다.
제주도의 2박 3일은 걱정 반, 나약한 자신에게 지지 않으려는 오기가 반이었다.
여행을 가면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산책을 하고 주변 사진을 찍고 나의 기억 속에 많은 것을 담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것이 나의 본 모습인데 이번에는 내 한 몸 일으키기도 힘들어 사진은커녕 밤새 뒤척이며 아침 식사시간이 다 될 때까지 누워 있다가 “괜찮냐?”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겨우 일어났다. “산책도 안 나간 걸 보니 정말 아픈 것이 맞구만”이라며 핀잔을 주는데 할 말이 없었다.
눈은 빠질 것 같고 몸도 으슬으슬하고 특히 목이 찢어지는 듯한 증상이 가장 힘들었다. 코로나 검사도 해 봤는데 음성이었다. 목이 많이 부어서 내 목소리를 잃어버린지 오래인데다가 항생제를 계속 복용하고 있어서 밥맛도 없고 귓속 통증으로 잠자기도 힘들었지만 일행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더 조심했다.
첫날 저녁, 귀가 계속 아파서 인근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는데 어차피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다음 날 다시 와서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 택시를 불러 이비인후과를 갔더니 요즘 감기가 유행이어서인지 사람들이 엄청 붐볐다. 나 역시 '며칠 전에 독감 진단을 받았다'고 했더니 별다른 처방 없이 오전 내내 링겔만 맞았다. 한쪽 귀는 고막이 발갛게 부어서 완전히 막혀버렸다고 했다.
애들 키우면서 중이염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자주 드나들었지만 이렇게 무서운 병인지 몰랐다. '증상이 심하면 가끔 고막이 터지기도 한다'는데 다행히 또 재생된다고 한다. 링겔을 맞고 나서 열도 좀 가라앉고 조금씩 호전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은 시간은 일행과 섞여 원래의 내 모습처럼 즐기려고 노력했다. 친구가 챙겨 준 비타민과 진통제를 먹으며 악으로, 깡으로 버틴 보람이 있었다.
이번 병치레로 냄새도 못 맡고 한쪽 귀가 평생 안 들릴까봐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다. 거의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왼쪽 귀에 벌레가 있는 것처럼 뽀시락거리고 목소리도 여전히 허스키하지만 그래도 이만한 게 참 다행이다.
돌이켜 보면, 내 삶 중에 가장 큰 고비라고 생각 될 만큼 아주 많이 지독하게 아픈 날들이었다. 평상시에 살 안빠지게 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며칠 새 몸무게도 3kg가 빠졌다.
몸이 아프니 만사가 귀찮고 집중도 안되고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점점 사라졌다. 밥을 잘 못 먹으니 눈 밑이나 손발도 떨리고 ‘이러다 죽거나 장애가 올 수도 있나?’ 싶어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삶과 죽음이 결코 남 일 같지 않게 생각되었고 '이런 심리적 두려움이 약한 마음을 점차 갉아먹고 이러다가 쉽게 무너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갑자기 하늘에 계신 신들을 찾아야 할 것 같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지난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았다. 또한 ‘더 착하게 살아야 하나?’는 의문과 함께 나의 남편과 아옹다옹하는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가슴 깊이 느꼈다.
벌써 녹음 짙은 5월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비인후과를 다니고 항생제를 포함한 많은 알약을 복용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병원을 제집처럼 들락거려서 몸은 나이 먹었음을 진즉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반항하고 있나 보다. 이제는 마음도 다독여가며 더 많이 아프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P.S
제주도에서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고등학교 다닐 때 친했던 친구로부터 갑자기 연락을 받았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전화를 받으니 별로 반갑게 응대하지 못했지만 거의 30여 년 만에 통화하면서 다른 친구들 소식도 들으니 없던 기운이 생기며 ‘하루빨리 나아서 이 친구들을 꼭 만나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친구 전화가 없었다면 나의 몸과 마음이 서서히 약해짐을 고스란히 느끼며 '난 왜 이렇게 자주 아픈걸까?' 고민하고 많이 힘겨워했을 것 같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남아있는 기운마저 아득해져 축 쳐져있을 딱 그 타이밍에 '이 고비를 빨리 이겨내자'는 희망의 의지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었다. 아직 얼굴도 못 본 옛 친구들 덕이 컸다.
“보고싶다 칭구야! 조만간 빨리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