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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트리

레몬아 열려라~~ 개봉박두!

by 바람꽃

2023년 7월, 신설 중학교에서 3년 만기를 꼬박 채우고 인근 지역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3년 전, 개설사무원으로 발령 받았을 때 학교 주변에는 이제 막 들어서고 있는 새로운 아파트와 사방이 공사판이던 신설 지구에 4층 높이 학교 건물 뼈대만 덩그러니 세워진 채 시설 장비나 교구, 행정업무를 모두 새로 시작한 터라 볼펜 하나부터 교실 내부 구석구석 손길 하나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마음 고생 몸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직원 모두 다 같이 잘 협조해 준 덕분으로 별일, 별 탈 없이 잘 지내다가 아쉬움 모두 탈탈 털어내고 개운하게 작별을 고했다.


선생님 중 한 분은 자기 와이프도 우리와 같은 교육행정직에 있다면서 여러모로 신경도 많이 써 주고 일처리도 깔끔하게 잘해 줘서 많이 고마웠다.

그리고 어느 날, 많이 서운하다며 시골집에서 키웠다는 '레몬트리'를 가져다 주었다.

작은 화분에 얼핏 귤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여린 나무 하나가 나뭇잎 몇 개 달린 채로 덩그러니 서 있는데 잎을 뜯어서 향을 맡으면 얇게나마 상큼한 레몬향이 났다.

사실 식물이나 꽃 키우는 작업은 '물이 마르지 않게 꼬박꼬박 잘 주면 나의 노력을 배신하지 않을거라는 단순무식한 지론'을 가지고 있는 터라 집에 가지고 와서 물도 잘 챙겨 주고 나름 지극정성을 쏟았다.

겨울에는 베란다에서 햇볕이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아 주고 한 번씩 눈여겨보면서 ‘잘 자라라’고 격려도 해줬다.


매서운 추위가 지나가고 따뜻한 기운이 창가에 내비치니 어느새 꽃망울이 3개나 피었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열매까지 맺혀 보자'는 결의도 다졌다. 은근슬쩍 내 눈치를 보며 나무 주변을 맴도는 냥이가 혹시라도 꽃나무에게 해코지 할까봐 여러 날 눈여겨보며 감시망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분명 잘 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꽃망울 2개가 한꺼번에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에 2개씩이나 떨어지니 ‘음~ 열매 하나라도 잘 열리려고 그러나보다’ 라고 위로했다.

며칠 후 꽃망울 아래에 조그맣게 열매가 맺히는 것도 같았다. 분명 매일 매일 조금씩 살며시 잘 자라고 있어 보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마지막 남은 꽃망울조차 바닥에 나뒹굴었다. 꽃망울이 떨어질 만한 원인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데 왜 떨어진 것인지...

할 수 없이 '남아 있는 나무라도 잘 키웠다가 내년에 다시 꽃을 피워보자'는 마음으로 자연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베란다 밖, 실외기 위에 화분을 두었다. 산들산들 바람도 만나고 내리쬐는 순한 햇살 맞으며 가끔 빗물로 목도 축이고 친환경 속에서 잘 살아라고!


레몬트리와 만난 지 거의 1년째 되어갈 무렵,

어느 날 창 밖에 홀로 서 있는 레몬 트리를 보니 잎은 바짝 말라 있고 앙상한 줄기가 밑에서부터 거의 절반이 어두운 색으로 변해 있었다. 작은 잎새 하나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고 메마른 가지를 붙들고 있었지만 나무는 이미 죽은 듯 했다.

(마지막 잎새 하나 겨우 매달려 있던 슬픈 나무의 모습을 찍었는데 아쉽게도 사진을 도통 찾을 수가 없다)

'언제부터? 왜? 역시 난 나무는 안 되는구나’ 스스로 자책하며 선물받은 나무를 쉽게 버릴 수 없어 다시 베란다로 들여다 놨다.

‘왜 죽었는지, 이렇게 가느다란 줄기가 바싹 마르도록 왜 몰랐는지’ 말도 못하는 나무에게 너무 미안했다.

'주인 잘 만났으면 지금쯤 레몬도 열리고 튼튼하게 잘 컸을텐데...' 생각 되었다.

'다시는 나무 선물은 받지 않으리라' 또 한번 다짐하며 어떻게든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궁리 해 봤지만 ‘혹시나’하고 여태 버리지 못하고 그저 두 손 놓고 베란다 한 귀퉁이에 슬며시 밀어두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직접 식물을 키우기보다 잘 크는 나무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갖거나 식물을 정성껏 잘 키우는 주인을 만나 ‘마음껏 피고 활짝 웃는 꽃들을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 하자'고 굳은 결심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간 시간 속에 레몬트리의 기억이 사라질 즈음, '대반전'이 일어났다.

'분명히 죽었다'고 생각하고 깡마른 채로 창가에 내버려 두었었는데 포근한 바람 살며시 이는 어느 날, 앙상한 가지에서 초록빛 여린 새싹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버렸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열매는 나중에라도 열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 라는 심정과 '다시는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또 다시 정성을 다해 열심히 물을 주고 있다.

나의 애타는 마음과 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올해는 꽃망울도 제법 많이 맺혔다. 그리고 따스한 햇살 받으며 꽃도 피었다. 바람 불면 날아갈까, 움직이면 떨어질까 최대한 조심조심 지켜보고 있다. 살아 있어서 참 다행이다. 푸른 잎이라도 볼 수 있고 잘 자라줘서 한 숨 놓았다. 우연히 받은 조그만 선물 하나가 두근두근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생각보다 많이 맺힌 꽃망울을 바라보며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벌이 없는데 열매가 맺힐수 있는 건가?'

이제는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는 마음조차도 모두 비우고 그냥 죽지 않게 잘 지켜봐야겠다.

짐짓 모른척하면서 키우다가 오롯이 나만의 레몬이 진짜로 열린다면 정말 대박이겠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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