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흩날리는 날에~
매년 4월 첫째주 토요일, 우리 네 자매는 전라북도 남원에서 모인다.
여기는 아빠의 고향이고, 우리 친정식구들이 어렸을 때 살았던 '곡성'과도 가까워서 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다. 그리고 2022년 한 해에 4일 사이로 친정 부모님이 모두 떠나실 때까지 내내 머무르시던 마을이기도 하다.
벌써 3주기가 되었다.
주말에 언니들과 시간을 정해서 점심시간에 만나면 우선 엄마 아빠가 단골이었던 식당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반가운 인사를 전한다. 특히 이번에는 올 3월 막 군대에 들어간 막내딸이 장성에서 신임 장교 훈련을 마치고 주말에 외박을 나와 같이 동행하게 되어 더욱 든든하고 좋았다.
큰언니는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조금 연착되는 바람에 늦은 점심을 부랴부랴 먹고 부모님 산소로 향했다. 비가 와서 날씨는 별로였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를 오랜만에 만난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엄마와 아빠가 계신 곳은 잔잔한 푸른빛 호수를 내려다보며 드넓은 평야와 해마다 새로운 계절을 알려주는 많은 꽃나무들이 어우려져 있어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약간은 시린 바람이 남아 있지만 매번 산소에 갈 때마다 예쁜 벚꽃과 이름 모를 봄꽃들이 피어 있어 부모님이 마지막 가시면서 우리 자매에게 일부러 남겨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년에는 개화기가 조금 늦은 탓에 꽃들을 많이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올해는 그야말로 사방이 꽃들의 천국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안부를 전하고 좀 더 오랜 시간 머무르고 싶었지만 비 때문에 할 수 없이 일찍 철수했다.
다음 목적지는 우리 식구들이 하룻밤 같이 지낼 펜션으로 향했다.
펜션 역시 지리산 자락에 있어서 더없이 아늑하고 고요하고 주변에 맑은 시냇물도 있어서 더 좋았다.
언니들은 나와 최소 8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있어서 시골 생활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가득하다. 그래서 언덕을 오르내리며 나물도 캐고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산책하는 곳이 있으면 아주 좋아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생각보다 좋은 장소를 잘 고른 것 같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각자가 준비해 온 짐을 풀고 남편들을 내팽개친 채 가위와 칼과 봉지를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지천에 널려 있는 쑥과 나물을 캐기도 하고 원앙새가 동동 떠 있는 냇가를 따라 산책도 하면서 엄마 아빠와 가졌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자매들 간에 우애를 다졌다.
저녁이 되어서는 작은아버지를 모시고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 아빠를 추도하는 행사를 가졌다. 엄마 아빠에 대해 기억나는 에피소드와 하고 싶은 말 등을 자유롭게 나누며 지난 날을 추억했다.
아련한 추억에 젖어 서로가 눈물을 한 번, 두 번 찍어낼 쯤, 셋째 언니가 ‘최근에 엄마가 꿈에 나타나 커다란 호박을 던져주셔서 받았다’는 꿈 얘기를 하자 서로 태몽인 것 같다며 주인 찾기에 열을 올렸다.
우리 남편은 내가 계속 잔병치레를 하니 'A/S를 맡기고 싶어도 맡길 수가 없어 아쉽다'고 궁시렁거렸다.
식구들 모두 일 년의 시간만큼 주름이 조금씩 늘어나 있었지만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나는 독감이 너무 심하게 걸려서 내 목소리를 잃은 채 계속 속삭이고 다녀야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언니들을 보니 또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잘 버텨냈다.
저녁 식사는 큰언니가 제일 잘하는 약밥과 둘째 언니가 준비해온 회와 과일, 셋째 언니는 감기가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해 온 밑반찬 그리고 우리는 목포의 특산물인 홍어삼합을 위해 홍어, 수육 그리고 남편이 작년에 직접 담은 묵은 김치와 파김치를 준비했는데 언니들이 너무나 맛있다며 나눠달라고 할 정도로 인기 만점이었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 덕분에 요리도 잘하고 김장도 잘하는 우리 남편이 설거지까지 도와줘서 간단하게 정리를 마치고 밤새 못다 한 얘기들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나는 딸과 함께 잠깐 짬을 내어 근처에 있는 카페도 가고 사진도 찍고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숙소는 여자들이 2층을 차지했는데 시간이 언제 그렇게 빨리 지나갔는지도 모를만큼 늦은시각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내일은 주변에 갈 만한 핫플레이스를 찾아 식구들 모두 꽃놀이도 하고 좋은 시간을 가질 계획이었으나 큰언니 기차 시간이 촉박해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할 수 없이 큰언니를 먼저 보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에 가족사진 한 장 남길 계획이었으나 큰언니가 시간에 쫒겨 인사도 못하고 어느새 먼저 출발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엔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는 진리를 꼭 실천해야지!
남은 언니들과는 구례 투어를 했다. '반야원 플라타너스 카페, 운조루 고택, 윤스테이 쵤영지 쌍산재' 등 볼거리가 참 많았다. 구례에 가게되면 꼭 한번 들러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 코스는 부모님과도 자주 가고 나와 조카들의 상견례 장소이기도 한 '산장 식당'에 가서 국물 진한 메기탕과 참게탕 등 추억의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다음에 만날 때도 다들 건강하게 이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서로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언니들 모두 사랑해’라는 속마음을 조용히 꺼내어 본다.
4월 봄은 우리 친정 식구들의 계절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날 좀 봐달라며 기웃거리는 작은 꽃들과 잔잔한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부모님을 기억하고 언니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많이 설레었다.
나의 귀는 계속 앵앵 울리고 얼굴은 열감에 들떠 발갛게 달아 올랐지만 마음만은 여린 꽃잎처럼 여전히 둥실둥실 가볍게 떠다녔다.
오늘도 가장 아름다운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