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길
우리 동네 골목길은 얽히고설킨 복잡한 '미로'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이리저리 분간할 수 없는 작은 길들을 지나 몇 번 꺽고 조금 돌다 보면 신기하게도 금새 또 다른 길과 만나 시원시원하게 뻥 뚫린 큰길로 이어진다.
직장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자주 다니는데 지나다니는 길목마다 볼거리도 쏠쏠하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좁은 골목이지만 주변은 항상 말끔하다. 집을 보수한 지 별로 오래 되지 않은 알록달록한 펜션 같은 집도 있고 어느 집 담벼락에는 옛 추억을 떠올릴 만한 옛스럽고 정겨운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바삐 지나가다가도 발걸음을 잠시 머무르게 되는 '마법'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 마을이 바다 가까이에 있어서 아주 가끔은 다양한 어망이나 통발들을 모아놓고 수선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매일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애국심이 강한 가정집이 있는가 하면, 집 안팎으로 구석구석 작은 공간에 향기 나는 꽃과 나무를 정성스럽게 심어 놓은 집들도 많다.
사방으로 뻗어있는 골목길 중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산책을 나갈 것인지 고르는 재미와 함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수선화, 진달래, 장미, 수국, 국화 등 오색빛깔 빛나는 다양한 꽃들을 마주하며 잠시 웃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기도 한다.
특히,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나지막한 담장 아래 커다란 화분이나 고무통에 부드러운 흙을 가득 채워놓고 상추, 대파, 배추, 부추, 고추 등 각종 채소를 키우기도 하는데 심지어 그 작은 공간에 감이나 사과, 동백나무 등 커다란 나무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어느 일반 가정의 정원이나 밭뙈기 보다도 더 풍성하고 소담스러운 환한 정경이다.
가끔은 보물을 찾은 것 마냥 생각지도 못한 '특이한 볼거리'도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을을 지켜왔을 듯한 진짜 우물도 있고 바위틈에서 얼음을 뚫고 자란 작은 식물들과 추위를 피해 따스한 햇볕 아래서 잠시 쉬고 있는 비둘기까지!
항상 똑같은 골목이지만 한 번씩 지나가면 느낌이 매번 새롭고 설레기도 한다.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풍경을 보게 될지 은근히 기대되면서 마치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는 기분이랄까?
그 외에도 '나를 격려해주고 토닥여주는 문구나 멋진 그림들'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어 이 또한 큰 즐거움을 준다.
가끔은 점심 먹고 사무실에 앉아 나른한 잠을 부르며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옛 추억도 생각나게 하고 나를 응원해 주는 것 같은 예쁜 그림들 덕분에 게으름을 툭툭 털어내고 일부러라도 밖으로 나간다.
우리 동네 길목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마음과 기분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신비한 힘이 있어 '항상 힘내라!'고, '잘하고 있다!'고 위로해 주고 치유해 주는 것만 같다.
친정 엄마도 작은 땅뙈기만 보이면 무엇이라도 심어서 소일거리를 하셨었는데 동네 주민들도 그런 비슷한 마음인가 싶어 정성스럽게 키운 식물이나 채소들을 보면 마음 한켠이 뭉클하게 아려온다.
나도 아파트에서 나만의 '미니 정원'을 만들어 보기 위해 몇 번 시도해봤으나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큰화분으로 화단을 만들어 놓으면 우리집 냥이가 흙을 파헤칠거라는 편견 때문에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지만 가장 키울만 하다는 토마토와 상추, 대파 등을 심고 자식 대하듯 소담스럽게 키워서 한 계절 직접 먹어보는게 나의 소박한 꿈이다. 꼭 성공해서 좋은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마을에서 담벼락은 '작은 정원이고 무한한 텃밭'이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부지런해서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을 활용해 좁은 땅덩이나마 꽃이나 밭작물을 심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가벼운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애써주시는 정성들이 참 고맙기도 하다.
'나는 참 좋은 동네에 살고 있다.
그래서 귀찮아도 산책을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