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기회다!
너무나도 맑은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들이 뭉실뭉실 떠 있는 모습을 보거나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황홀한 자연을 보면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주변에서 미술 전시회가 있으면 기회가 되는대로 둘러보기도 했는데 예체능에 특히 관심 있어 하던 아련한 기억들이 내 안에서 계속 꿈틀꿈틀 머물러 있어 작은 꿈으로 남아 있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애들도 다 크고 나만의 취미를 가져볼까 고민하던 중 마침 인근 공공도서관에서 글과 그림을 함께 할 수 있는 캘리그라피 프로그램을 개강한다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청을 했다.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봐도 붓을 잡고 물감을 풀어 그림이라는 것을 그려본 지가 고등학교 이후 처음인 것 같아 많이 설레기도 했다. 사실 그림을 그리려면 물감을 짜고 물통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귀찮아서 수년을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제대로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캘리그라피란 고대 그리스어 ‘Kallos(칼로스-아름다움)’와 ‘Graphein(그라펜-쓰기)’의 합성어로 주로 펜이나 붓을 사용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글자를 그리는 예술’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첫 시간에 보여주셨던 작품들을 보니 예쁜 사진 위에 좋아하는 문구를 쓴다거나 아기자기한 소품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응원의 글이나 감사의 마음을 다양한 글씨체로 멋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평상시에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데다가 여러 소재로 그림도 그리고 예쁜 글씨도 연습할 수 있으니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이었다.
선생님도 작품 전시회에 참여 하실 만큼 여전히 활동도 활발히 하시고 평상시에 카페 같은 공간에서 수강생들과 작업도 하신다니 가끔 들러서 조언도 구하고 이번 프로그램이 끝나더라도 계속 신청해서 꾸준히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쓰지 않는 색다른 글씨를 붓펜으로 삐뚤빼뚤 어설프게 모사하거나 연습하고, 선생님이 나눠주신 그림이나 도면을 보면서 먼저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후 색칠을 하기도 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이를 먹어서인지 눈이 잘 안보여서 삐죽빼죽 자꾸만 선을 벗어나게 되고 세세한 작업을 할 때는 긴장해서인지 손 떨림도 조금씩 느껴졌다. 하지만 작품 하나씩 완성하고 나면 또 나름 재미있고 뿌듯했다.
수강생 중 어떤 분은 색감이 아주 좋으신 분도 있었고 선생님이 하나를 가르쳐주면 응용력이나 창의력이 뛰어나 곧잘 따라 하시는 분도 있었다. 특히 수업이 끝날 때 쯤 작품을 한곳에 모아놓고 보면 남다른 실력을 발휘하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재능을 찾기도 했다. 무척 부러웠다.
일주일에 겨우 두 시간이지만 자칫 아무 흔적 없이 흘려버릴 수 있는 작은 시간들을 고개 한번 들지 않고 열심히 수업한 결과 제법 여러 작품들이 쌓여갔다.
선생님이 중간에 잠시 쉬면서 하시라고 말해도 다들 너무 열심이어서 나까지 정신없이 집중하다 보면 뒷골이 당길 정도였다.
나의 마음가짐은 스트레스 받지 않기 위해 ‘잘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였는데 실제로 겨우겨우 따라가는 정도였고 작업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다.
캘리그라피는 붓이나 펜 등 사용하는 도구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뉘는데 하얀 화선지 위에 까만 먹으로 써 내려가는 전통적인 방식도 있지만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처럼 수채화 기법과 브러시펜을 사용하여 개성과 감성을 담아내는 느낌도 친근하고 좋았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해서 새롭게 글씨를 배워나가는 기분이었다.
네모 칸 국어 노트에 처음으로 한글을 써 내려갈 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가르침이 생각났다.
‘글씨는 내 얼굴이라 생각하고 네모 칸에 꽉 들어 차도록 크고 예쁘게 쓰라는!’
캘리그라피 역시 '크고 진하게, 다닥다닥 붙여서 쓰는 것'이 예쁜 글씨를 쓰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붓펜 하나 들고 다니며 짬이 날 때마다 수시로 연습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학생이 준비한 문구들을 선생님이 가끔씩 개인별로 종이에 써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역시 고수의 글씨체를 흉내 내기에 나는 너무나 초라한 하수처럼 느껴졌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하고 싶은 의지는 충만하나 색감을 고르는 실력도 별로고 창의력도 많이 떨어졌다.
이번 기회에 연습을 많이 해서 부족한 부분들이 조금이나마 향상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수업 일수가 좀 더 길었더라면 더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을텐데 벌써 13주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당장 다음 주 화요일부터는 또 다시 집에서 뒹굴거려야하는 상황이다. 나의 게으름에 지지 않고 스스로 배우는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충분히 연습하는 시간을 갖고 하반기에 다시 신청할 계획이다.
수강생 중 가장 기억나는 분은, 캘리그라피 전시회를 다녀오셔서 작품들을 하나하나 공유해 주시거나 틈틈이 단톡에 소식을 전하는 문자도 올려주시고 마지막 시간에는 책걸이를 할 수 있도록 다과를 손수 준비해 주시기도 하셨다.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지만 많이 감사했다.
다과를 먹으면서 비로소 얼굴 마주 보며 잠깐씩 담소도 나누고 그동안의 수고를 격려했다.
수업 시간에는 잡담 한마디 없이 각자 너무 열심히 하느라 서로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그래서 더 집중하며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왕 시작했으니 좀 더 노력해서 '지인들에게 작은 책갈피라도 선물할 수 있을 만큼 꾸준히 연습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리고 좀 더 나이 들어서 차분히 앉아 자연을 느끼며 생생한 그림을 그려보자는 소소한 꿈을 조금씩 실천해 보려 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관심 있으면 수강해 보시길 추천한다. 남녀노소 구분 할 것 없이 누구나, 어디에서나, 가볍게, 틈틈이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라고 생각된다. 마음에 와닿는 멋진 글이나 문구도 계속 찾아보게 되고 수시로 손작업을 하니 치매 예방에도 아주 효과적일 것 같다.
이제는 꿈속에서도 예쁜 글씨체가 바람에 훨훨~~ 날아다닐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