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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펄펄 끓는다.

오늘도 폭삭 속았수다!

by 바람꽃

바깥은 며칠째 완전 불볕이다.

하늘은 왜 그렇게 변덕을 부리는지 며칠 전에는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로 전국을 어수선하게 하더니 지금은 세상에 비추는 모든 조명을 온전히 우리에게 내리꽂는 것만 같다.

이제 막 초복이 지났는데 서서히 발동을 걸기 시작한 여름 손님은 한치도 양보의 기미가 없어 보인다.


우리 아파트는 방이 4개다. 시부모님이 사셨던 큰방과 우리 부부 방, 그리고 딸과 두 아들의 방.

총 7식구가 북적거리며 수년을 살다가 26년 동안 함께 사셨던 시부모님도 2년 전에 모두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딸까지 포함하여 모두 군대에서 복무중이라 오롯이 우리 부부만 덩그러니 남았다.

전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넓은 공간들이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그런데 문제는...


애초부터 우리 집에 ‘에어컨’이라고는 시부모님 방에만 있었다. 나머지 식구들은 대부분 직장에 있거나 거의 밖에서 생활하므로 하루 24시간을 집에서만 보내시는 시부모님이 더위에 지쳐 힘들어 하실까봐 오래 전에 설치해 드렸는데 시부모님도 전기세를 아끼시느라 겨우 손에 꼽을 정도만 사용하셨다. 결국 아이들이 덥다고 호들갑을 떨 때나 한 번씩 켜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여름을 다독이며 그냥저냥 잘 보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전히 시부모님 방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에어컨을 다른 방으로 옮기거나 제대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더 덥게 느껴져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했었다.

직장에서 돌아와 아무도 없는 집안에 들어서면 한낮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 이미 32도를 웃돌았고 한밤중에도 후끈후끈 움직이기만 해도 땀이 뻘뻘 날 정도로 펄펄 끓었다. 너무 더워서 산책 겸 밖에 나가보면 오히려 밖이 더 시원할 정도였다. 집이 커서 오래된 에어컨을 거실로 옮겨봤자 용량도 부족하고 여러모로 새로 사기도 애매해서 매번 그냥 버티고 있었는데 우리가 나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지구가 아파서 몸부림을 치는 건지 순수한 자연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기에는 갈수록 버거워졌다.


올해는 나 역시 조금만 움직여도 코 밑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책상에 잠깐 앉아 있어도 의자가 얼룩덜룩해 질 정도로 땀이 고이고 거의 매일 머릿속이 땀으로 가득 찼다.

'올 여름을 어떻게 잘 넘겨 볼까' 고민하다가 큰맘 먹고 실외기 없는 에어컨을 사 봤다.

'올해에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으로 후기도 좋고 기술력도 월등히 좋아져서 짱짱하다'는 광고에 홀딱 넘어가 눈 딱 감고 주문했는데 막상 도착해서 조립해 보니 기대와 달리 생각보다 너무 조잡해서 남편한테 잔소리만 몽땅 듣고 다음 날 바로 반품했다.


남편은 열대야에 시달리는지 밤새 뒤척이고 잠을 잘 못자는 반면, 나는 선풍기 하나로도 살짝 이불을 걸치고 잘 만큼 잘 버틴다. 나는 오히려 잠자리를 바꾸는 것이 더 불편해서 남편에게 '힘들면 시부모님 방에서 자'라고 했지만 또 혼자 자기는 싫은지 끝까지 내 옆자리를 고수한다.

조금의 양보도 없이 밤낮으로 사람들을 이래저래 괴롭히는 더위와 마치 전쟁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해가 지날수록 여름이 정말 무섭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서 '1도 라도 온도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았다.

우선 창문에 있는 블라인드 커튼을 바람이 통하도록 조금만 남겨놓고 모두 내린다. 마치 커다란 이불 겉감이 빨래줄에서 바람에 나풀나풀 나부끼는 것처럼 보여 제법 운치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방에 있는 선풍기 5대를 교대로 켠다. 나머지는 생수를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하나씩 꺼내 먹기.

솔직히 말하면 그래도 너무 더웠다.

이 와중에 남편은 애들이 '군대에서 일정을 맞춰 함께 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찜통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소고기를 사다가 여름과 경쟁하듯 '집의 온도를 더 올려보자?!'는 기세로 열심히 보글보글 장조림을 끓였다.

부모의 사랑은 더위조차도 감히 덤빌 수 없는 무한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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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이 많아 왠만하면 거실에 잘 나오지 않고 자기 집에만 콕 처박혀 있는 '냥이'도 제법 더운지 발걸음 닿는 곳마다 누워서 축 늘어져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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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외출할 때는 최대한 태양을 피하기 위해 조그만 양산 하나에 온 몸을 구기는데 조금이라도 살갛이 노출되면 바로 타버릴 것 같은 분위기이다.

하루빨리 고집스러운 이 더위가 한풀 꺽이기를 바래본다.

올려다보기도 힘든 쾌청한 하늘에 커다란 구름이 떠다니다가 햇님을 잠시 숨겨줄 때가 그나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푹푹 찌는 듯한 한여름이 올 때 마다 매번 똑같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년에는 더 덥다는데...’


오늘도 지칠 줄 모르는 더위를 잘 버텨내고 종일 수고하셨을 모든 분들께 전해본다.

'오늘도 폭삭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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