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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가 똥쌌다!

by 바람꽃

무더운 여름 밤이 깊어 갈 무렵, 침대에 들어가던 남편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으악”

다른 방에서 열심히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헐레벌떡 안방으로 쫒아갔다.

“왜, 무슨 일이야?”

“이오가 똥 쌌어.”

“잉?, 우리 침대에?, 왜?”

이오는 애완용 삼색고양이다. 버젓이 화장실이 있는데 왜 안하던 짓을 했는지 놀란 가슴을 쓸어안으며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로 당황스러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남편은 불도 안 켠재 침대에 오르다가 손으로 눌러버렸다고 했다.

“오 마이 갓~”

나는 부랴부랴 이불을 걷어내고 남편은 화장실로 직행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 이오에게 쫒아갔다.

“이오야, 너 왜 우리 침대에 똥 쌌어?”

“점순이! 너 미칫나?”

남편은 ‘이오’ 이름 대신 코 밑에 있는 점 때문에 ‘점순’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정작 이오는 “뭔 일 있었어?” 라는 눈빛을 보내며 전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바로 어제 1박 2일로 휴가를 다녀오고 아파트 거실에 에어컨이 없어 요즘 집을 자주 비운터라 ‘설마 복수를 하려고 그랬나?’ 생각했다.

‘하긴 요새 우리가 주말마다 이오만 두고 자주 나가기는 했지.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처음에는 괘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 냥이가 나처럼 엄청 소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주인이 미워서 그랬을 것 같지는 않고 도대체 왜 그랬을까?’ 계속 생각해봤다. 남편도 이오의 행동이 믿기지 않는지 '토한 거 아닐까?'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다음 날도 또 그럴까봐 곤히 자고 있는 이오를 계속 들여다보며 감시 모드에 들어갔다.

나는 이불을 세탁기에 쑤셔 놓고 빨래를 돌리다가 문득 이오 화장실 옆에 자기 덩치보다 더 큰 아이스박스가 뒤집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남편이 아이스박스를 정리하고 물에 씻은 후 말리기 위해 엎어 놓은 것이었다.

‘앗, 저거다!’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겁이 많은 이오가 아이스박스가 무서워서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고 실수를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 침대에...ㅜㅜ


남편에게 설명을 해 주고 아이스박스를 걷어낸 후 이오를 안아서 화장실을 보여줬다.

“이오야, 이제 무서운 거 없지. 그러니까 여기다가 볼일 봐도 돼~”

처음에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꽁지 빠지게 달아나더니 두번, 세번 보여줄 때는 안심하는 눈치였다.

혹시라도 내 생각이 틀렸는지 체크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몇 번씩 우리 침대와 화장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해질녁이 다 되어 이오가 다시 제 화장실을 사용한 것도 확인했다. 이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괜시리 오해한 것 같아 미안했다.


남편이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네 엄마가 나이를 먹더니 심장이 쪼그라들었는지 겁이 많아졌다고!”

맞는 말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돌다리도 한번 더 두드려 보게 되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만큼 생각도, 겁도 많아졌다. 내가 이오를 닮아서인가?

아무튼,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이렇게 잘 마무리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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