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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by 바람꽃

날이 덥다는 핑계로 매주마다 밖으로 다녔더니 피로가 쌓이는 것 같기도 하고 모처럼 집안일 좀 할까 싶어 오늘은 집에서 조용히 머무르기로 했다. 창밖의 새들은 빨리 일어나라고 이른 새벽부터 시끄럽게 재잘거리고 눈부신 햇살이 나의 꿀잠을 방해했지만 나는 꿋꿋하게 침대를 사수했다. 하지만 다 큰 냥이가 쯥쯥이 하고싶다고 덤벼들면 손가락이 아파서 바로 일어나고 만다.

침대 위에서 꼼지락꼼지락 늦장을 부리다가 슬슬 배가 고파지니 냉장고에 있는 당근과 토마토와 최근에 지리산에서 사 온 햇사과를 섞어 몸에 좋은 주스를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빵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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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감성 있는 팝송을 켜놓고 중천에 떠 있는 햇살에 이불도 널고 그동안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화분들 이발도 해주는 등 한산한 토요일의 여유를 만끽했다.

남편은 핸드폰으로 무협지를 읽느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씻지도 않고 거실 쇼파와 한 몸이 되어 거의 부동자세로 있었는데 분위기 있는 음악을 틀어 놓으니 '마치 카페 온 것 같다'며 더 좋아했다.

오늘은 당초에 새벽시장도 가고 스크린 골프도 치고 외식도 할 계획이었으나 어차피 바쁠 것도 없고 여전히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뜨거운 태양을 마주하기가 무서워 뭉그적거리다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일들이라 그냥 '콕' 박혀있기로 했다.

동아리에서 창작 소설을 쓰기로 해서 몇 주 동안 계속 붙잡고 있던 글을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무리 짓고 다시는 쳐다보지 말자'는 각오로 책상 앞에 앉았다.

조금 집중을 하고 보니 벌써 점심시간! 냉장고에 남아 있는 음식들과 식은 밥으로 대충 때웠다. 엊그제 먹고 남은 순대와 닭발로 점심은 끝.


오후에는 더운 바람이 들어오는 쪽 창문을 모두 닫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에어컨이 없어도 이렇게 하면 바깥보다 훨씬 시원하다. 그래도 요즘에는 밤에 제법 찬바람이 불어와 집안의 기온도 많이 떨어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것은 여전해서 '이열치열' 정신으로 운동도 하고 악기 연습도 하고 내친김에 청소까지 했다. 또 틈틈이 유튜브도 보고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은 창작 소설을 읽고 또 읽고 또 수정하고 무한 반복...

하루종일 집에만 있기가 그래서 바람도 쐴 겸 남편과 마트도 갔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빵이 있는 마트에 들러 장도 보고 빵도 사고 다음으로 남편이 먹고 싶어 하는 복숭아를 사기 위해 또 다른 마트에 들렀다. 요즘 과일값이 너무 비쌌지만 '달다'고 하니 속는 셈 치고 샀는데 '경품권'을 3장이나 줬다.

추첨 일시는 오늘 저녁 7시!

남편은 어차피 안될거라며 언제 또 오겠냐고 그냥 버리라고 했다. 경품권을 보니 우리집 주소도 적혀있어서 혹시나 하고 일단 상자에 넣었다. 예전에는 경품권을 받으면 꼬박꼬박 이름을 써서 정성스럽게 넣었었는데 사실 경품 추첨 시간에 나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차피 '꽝'일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최근에 우리 동아리 회장님이 '동네 마트에서 경품을 추첨하는 문자를 받아서 다녀왔다' 라는 글을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것을 보고 나도 문득 어떤 분위기인지 알고 싶었다. 나에게 꼭 오라고 유혹이라도 하는 것처럼 시간도 얼추 맞아가는게 왠지 느낌도 좋았다. 운동 삼아 나가자고 남편을 졸랐지만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혼자 겸사겸사 집을 나섰다. 발걸음을 빨리 해서 마트에 갔더니 '웬걸!' 사람들이 웅성웅성 많이도 모여 있었다. 갓길에는 지나가던 차들도 주차를 하고 구경을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상품이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알고보니 화장지 30롤부터 쌀, 한돈 선물세트, 현금 10만원, 30만원, 1등은 현금이 100만원이었다.

'진작 알았으면 이름도 정성스럽게 써서 잘 접어 넣을텐데...' 싶었다. 마트 직원이 마이크를 잡고 하는 말이 더 웃겼다. '현금은 제세공과금 22%를 제하고 줍니다' 라고 하니 주변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떼어간다’고 궁시렁거리기도 했다.

추첨 시간이 되자 주변은 갑자기 조용해지고 직원이 커다란 통에 담긴 수백장의 경품권을 섞어 한 개씩 뽑아냈다. 나처럼 경품권만 넣놓고 오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여기저기 단골 마트가 있어서 가는 곳마다 경품권을 넣었었는데 ‘주인 없는 내 이름이 허공에 얼마나 많이 불려졌을까’ 싶어 아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화장지 추첨부터 먼저 시작했는데 응모권에 이름이 없으면 바로 '패스'를 했다.

'아뿔사, 오늘은 나도 생전 처음으로 이름을 안적고 그냥 넣었었는데....' 역시 남편의 말을 들으면 안되는 거였다. 원래하던 대로 내 스타일대로 했어야 했는데 다시 한번 또 깨달았다.

‘남편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자!’

당첨자에는 이름 없는 응모권이 여러 번 나왔다. 그렇다면 '저 응모권이 내 것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품이 커지는데 이름 없는 응모권이 계속 나오면 내내 보고있는 내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난 오늘 최소한 화장지 30롤 이상을 허공에 날려버린 상황이 되었다.

아쉽지만 ‘꽝’이라 생각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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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운세가 좋을 것 같은 기대감이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어서 주머니에 현금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나간다' ‘로또’ 가게에 들렀다. 역시 송금은 가능했다.

여기는 1등도 자주 나오고 최근에는 '2등이 연속으로 당첨되었다'는 프랑카드가 걸려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게 안을 들어서니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사장님은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계속 복권을 뽑고 있었다.

'오늘은 우주의 기가 나에게로 몰리는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으로다가 복권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아마 내가 복권이 당첨된다면 브런치스토리에서 더 이상 내 글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

'난 아주 큰 잠수함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므로!'.

아침에는 무척 평온한 하루였다가 저녁에는 살짝 긴장되는 시간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조금은 생뚱맞았지만 참 웃픈 경험이었다. 다음에 경품권을 받으면 정석대로 이름을 꼭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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