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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끊다

플룻으로 음악을 꿈꾸다!

by 바람꽃

내가 기타를 배운 지는 거의 10년 정도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호회 활동을 위해 매주 월요일은 스케줄을 항상 비워둔다.

사실 난 그냥 음악을 듣거나 피아노, 플룻 등의 악기를 연습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기타는 별로였다.

기타를 치려면 한쪽 손톱을 바짝 짧게 자르고 나머지 손톱으로 줄을 튕겨야하므로 길게 길러야 한다. 난 한쪽 손톱만 자르는 것부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가느다란 줄을 손끝으로 계속 잡고 있다 보면 손가락이 빨갛게 부어 오르는 고통을 참아야하므로 별로 안하고 싶다고 내내 버텼었는데 결국 어쩔 수 없이 발을 담그게 되었다.

나의 첫 시작은, - 대학교 때부터 기타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했고 일반인이 되어서도 동호회를 구성해 거의 반평생을 취미로 연습하고 있는 - 남편이 ‘같이 하자’고 하도 꼬드겨서 큰맘 먹고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원래는 클래식 기타로 시작했는데 갈수록 회원이 많아져서 나중에는 클래식과 통기타 두 팀으로 나누었다. 클래식 반은 남편이 가르치므로 나는 전문가처럼 더 잘 치시는 선생님께 통기타를 배웠다.

처음에는 먼저 시작한 회원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배운 것을 계속 들으면서 틈틈이 연습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주변 친구들도 영입했다.

하지만 역시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기는 정말 힘든 것 같다. 내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연습실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둘 각자의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고 나도 겨우 한두 번 연습해서 합주를 하다보니 실력이 별로 늘지 않았다. 가끔 그만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혼자 외롭게 현관을 나서야 하는 남편과 내가 데리고 온 친구들 때문에라도 의리상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장 재미있게 열심히 했던 시기에는 한 달에 한 번씩 클래식과 통기타 팀이 모여 발표회를 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옛일이 되어버렸다.

난 우리 동호회가 좀 더 활성화되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도 가질 겸 몇 곡이라도 열심히 연습해서 하다못해 ‘길거리 버스킹이나 작은 음악회라도 하자’는 주의였지만 다른 분들은 그냥 ‘우리끼리 즐기자’는 주의였다. 동호회 분위기는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별반 다를거 없는 상황에서 월요일마다 기타를 치려고하니 가기 싫은 마음이 먼저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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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을 켜는 친언니가 매년 연주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하거나, 지인이 기타 동호회 회원들과 시내에 있는 광장에서 버스킹을 하는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을 보면 무척 부러웠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이런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애초에 내가 하고 싶었던 청사진의 그림도 점점 희미해져서 뭘 원했는지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은 회원도 대부분 줄어서 팀당 겨우 3명씩 남아 있는 정도다.

결국 회원이 너무 적어 두 반을 다시 합쳤는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는 어려우므로 할 수 없이 통기타는 고이 모셔두고 클래식 기타만 연습한다. 다른 회원들은 클래식 기타를 계속 쳐 왔거나 경력이 오래 되서 금방금방 합주가 가능했지만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내 입장에서는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갈수록 의욕을 잃어갔다.


남편만 아니었으면 진작 그만두었을텐데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기타를 끊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기타에 대한 기대와 흥미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조금씩 음악 활동에 대한 나의 목표가 무의미해져 가던 와중에 SNS에서 ‘시민오케스트라 회원을 모집한다’는 홍보를 보게 되었다. 때마침 예전에 플룻을 한두 달 배운 적도 있었고 비싼 악기를 오랫동안 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처박아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던 참에 이제는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계속 꿈틀거렸다.

적성에 맞지 않는 기타를 남편과의 의리 때문에 10년씩이나 붙잡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의 의무는 다 했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참에 '반란'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언쟁이 생기더라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평생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볼 여지가 없을 것 같았다.


오케스트라 모임은 다행히 기타 동호회를 하는 월요일 같은 시각에, 그것도 우리 아파트 바로 옆 교회 건물을 대여해서 연습하고 있었다. 기타 회원들에게는 인사도 없이 갑자기 그만둬서 미안하지만 남편이 알아서 잘 이해시켜 주리라 믿고 겨우 하나 남은 내 친구에게만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그 친구는 나와 상관없이 기타를 계속 배우고 싶어 했다.

남편한테 슬쩍 오케스트라 얘기를 꺼냈더니 예상대로 처음에는 무척 화를 냈다. 그러다가 월요일이 되자 ‘플룻 배우러 간다’고 했다가 각자의 생각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다 결국 둘 다 나가지 못했다.


사실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월요일을 반납했으니 ‘무더운 여름 한 달 정도 푹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유혹도 조금 있었으나 남편의 눈치가 보여 그 다음주에 망설임 없이 바로 찾아갔다.

첫 발걸음은 많이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역시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처럼 곡 수준도 많이 높고 악기 종류도 많았으며 스케일이 달랐다. 플룻 팀은 나까지 모두 3명인데 한 분이 플룻을 전공해서 제대로 잘 가르쳐 주었다. 플룻 계이름 기본만 겨우 알고 있는 왕초보 입장에서는 악보 하나하나가 무척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열심히 해야 할 동기가 생겼고 오히려 실력이 더 향상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11월에는 공연 날짜와 장소도 이미 예약 되어 있다. 올해는 전남음악협회에서 예산도 지원받아 회원들 모두 더 잘 해보려는 의지가 굳건했다. 나 역시 이런 분위기를 오랫동안 원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플룻은 고음을 많이 내는 악기이기 때문에 연습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아파트에 살면서 아무 때나 부르다가는 바로 민원이 들어올까 싶어 퇴근하자마자 바로 시작해서 남편이 올 때까지 딱 1시간 정도만 연습한다.

전에는 퇴근을 해도 별로 할 일이 없어서 마트에 들르거나 여기저기 해찰부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더 연습하기 위해 최대한 일찍 들어온다. 다행히 8월 한 달 동안은 '방학'이라고 하니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많이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이제는 모든 악기가 합주할 때 구경만 하지 않고 나도 함께 섞여서 제대로 부를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하고 있다.

다행히 월요일이 되면 남편 눈치 보지 않고 각자 연습하러 집을 나선다. 나도 진작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다시 새 마음으로 배우니 무척 재미있고 행복하다. 이왕 시작한 거 나이 먹어서도 취미로 계속 할 수 있도록 꾸준히 하고 싶다. 그리고 '넓은 무대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공연하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두고두고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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