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 개인적으로 큰 행사가 있거나 해외여행이 예정되어 있으면 새로운 일은 벌이지 않고 몇 주 전부터 평상시보다 더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인데 남편은 그러한 개념이 전혀 없는 것 같다.
해외여행을 3일 앞두고 주말에 갑자기 새김치를 담는다며 배추와 쪽파와 각종 양념거리를 샀다. 어차피 나는 보조 역할만 하므로 딱히 별말은 안했지만 작년에 김장할 때의 경험으로 보아 내 담당이었던 쪽파 다듬기는 허리통증으로 또 며칠 고생할까봐 일부러 다듬어진 것을 샀다. 마침 작은 시숙님 내외가 오셔서 부지런히 서둘러 김치도 잘 담고 야들야들한 수육도 먹으며 그럭저럭 마무리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당연하게 양념이 남은 데다가 누이에게 나눠주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지 남편은 지인 예식장에 간다고 나가더니 오후 늦게 배추 포기를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
이제는 남은 양념에 버무르기만 하면 되어 어쩔 수 없이 그냥 지켜보기만 했는데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배추 끝부분을 손질하다가 검지손가락 살을 잘라냈다. 일요일이라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혼자 지혈을 하고 붕대를 감고 여기에서 끝내나 싶었는데 손가락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배추에 소금 간하기 등 남은 작업을 마저 마무리했다. 큰일을 앞두고 이렇게 일을 벌이는 것이 못내 불만이었으나 서로 기분 상할까 봐 별말은 못했지만 많이 속상하고 화가 났다.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살점이 떨어져 나가서 움직이면 안된다'며 손가락 깁스까지 해줬다. 그나마 감사하게도 왼손이어서 여행하는 내내 영광의 상처를 하늘을 향해 디스코 추듯 흔들거리며 다녔다. 가운데 손가락 아닌 것이 다행 아닌 다행이다.
나 역시 요즘 탈모가 너무 심해 여기저기 병원을 다니다가 겨우 제대로 된 처방을 받고 머리카락 무게라도 조금 줄여볼 겸 남편이 애들 어렸을 때 이발해 준 경험을 살려 끝만 살짝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분명히 5cm 정도라고 했는데 궁시렁거리면서 싹뚝싹뚝 파마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이 잘라냈다.
'설마 설마' 하면서 머리를 묶고 보니 완전 쥐 뜯어먹은 듯 삐뚤빼뚤 엉망진창이었다. 할 수 없이 여행 떠나기 전날 밤 미장원에 가서 겨우 꽁지만 묶을 수 있을 만큼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그래도 머리 무게가 훨씬 가벼워지긴 했다.
해외여행 떠나기도 전에 다양한 해프닝을 남기고 드디어 우리는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고 거의 12시간이 지나서야 프랑크프루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바로 옆에서 통기타 연주자와 일행이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팝송과 가요를 불러주는 이벤트를 해줘서 잠깐동안 가을 음악회를 감상하는 행운의 시간도 가졌다.
짧은 공연이었지만 시작부터 참 좋은 느낌!
우리의 일정은 11.4일 부터 11.12까지 7박 9일 동안 독일,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동유럽을 일주하는 여정이었다. 마침 지인이 함께 하는 여행이어서 더 재미있고 든든했다.
평일인데도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비행기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석이었다.
남편과 지인 모두 떨어져서 앉았는데 나는 창가에 앉은 죄로 평상시의 두 배인 4시간을 꾹꾹 참았다가 독일 신혼부부인 듯한 옆 사람들이 잠에서 깨는 기미를 보일 때나 겨우 화장실을 이용하는 고초도 겪었다. 남편은 내 뒷자리인 꼬리부분 창가에 앉았는데 8시간을 꼼짝않고 가만히 버티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14시간을 날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독일 풍경은 늦가을을 가득 품은 알록달록한 나무들이 가득했는데 호수나 물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넓은 평야들이 대부분이었다.
함께 동행하신 가이드님 말씀으로는 '그나마 오늘은 다른 팀들보다 거의 1시간 정도 빨리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위도가 높아서 겨울에는 해가 무척 짧고 여름에는 백야현상 때문에 밤 10시가 되어야 어두워진다고 했다. 피곤한 우리를 환하게 반겨주듯 높은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53인승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도로는 그 유명한 '아우토반'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도로의 속도가 무제한인 것은 아니었다. 고속도로의 70% 정도가 권장 속도 130km를 넘겨도 단속하지 않는 무제한 구간이지만 교통사고의 사망률과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속도 제한 도입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총 30명이었다.
직장에서 퇴직 전 공로 연수로 오신 분도 있었고 아들과 단둘이 여행하시는 어머님과 연세가 있으신 부부들도 많았다.
가이드님은 젊은 시절 영어교사를 그만두고 38년째 하셨다는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모습이 무척 감사했다. 가끔 잘 삐지긴 하셨지만 농담도 잘 하시고 멋쟁이셨다.
여행이 끝나고도 가장 기억에 남는 농담 중 하나는 ‘우리가 살면서 절대 넘어서는 안되는, 꼭 지켜야 할 선이 3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폴리스 라인, 두 번째는 포토 라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이드 라인’이란다. 가이드보다 먼저 앞장서거나 눈 앞에서 안보이면 안된다는!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가이드님도 퇴직할 때가 다 되서 지금은 선을 안지켜도 제지할 기운이 없으니 다들 알아서 하라는~~ㅋ.
독일의 겨울은 우기 기간으로 '비 양은 적지만 거의 6개월 이상이 흐리다'고 했다.
독일에서 칼이 유명한 이유는 밤문화가 없어 외식하기도 힘들고 가정에서 요리를 계속 하다보니 더욱 발전했단다.
우리가 여행하는 기간 뿐만 아니라 독일에 머물렀던 마지막 날까지도 하늘이 도우셨는지 다행히 많이 춥지않았고 맑은 날이 대부분이었다. 이상기온의 영향이긴 했지만 역시 우리 부부의 여행에는 항상 날씨 요정이 따라붙는 것 같아 무척 감사했다.
동유럽은 옛건물이 많은데 건축법에 의해 철거는 못하고 리모델링을 해서 사용하므로 년수가 조금 덜한 것은 최소 300년, 좀 오래된 건물은 800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가정집은 외벽을 뚫는 것부터 건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에어컨 실외기조차 맘대로 설치할 수가 없고 추운 겨울에는 라지에이터로만 버티므로 동절기 여행시에는 4성급 호텔이어도 너무 추워서 여행객들에게 전기장판을 꼭 챙겨오라고 한다는.
7일 동안 4개 나라를 방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다 보거나 알 수는 없었다.
나라마다 가장 대표적인 몇 곳만 방문하는 일정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특색 있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다른 계절에 또한번 방문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독일의 첫 느낌은, 아이들이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알록달록한 삼각형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시차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새벽같이 일어나 지인들과 동네 한바퀴를 돌았는데 '지금 내가 독일이라는 나라의 한 마을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현실이 마치 꿈속을 거니는 것 처럼 믿기힘들 정도였다.
지붕이 뾰족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관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삼각형처럼 뾰족이 세워 잘 흘러내리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유럽의 지붕들이 붉은 이유'를 검색해 보니 유럽의 흙에는 다량의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불에 구우면 붉은색의 단단한 기와가 된다. 또한 매끄러운 성질이라 눈과 비가 잘 쌓이지 않고 겨울에는 태양열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감탄하는 것처럼 유럽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므로 미관상으로도 아주 효과적이라고 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