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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May 06. 2024

할머니와 생라면

추억의 과자

고등학교 시절, 타지에서 혼자서 자취 할 때

주인집 꼬부랑 할머니께서 한 평이나 될까 한 

작은 쪽방, 낡은 찬장 구석진 곳에 

겉이 닳고 닳아 시컴해진 오래 된 쇠밥그릇을  

소중한 보물이나 되는냥 꼭꼭 숨겨두셨다

  

어느 날 숨죽여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생라면을 잘게 부수어 숨겨 놓고는

굽은 등을 뒤로한 채 쪼그려 앉아

웃음 지을 때 보이던 서너 개의 이로  

느릿느릿 오물거리시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가끔 입이 궁금할 때면 

아무도 모르게 한 번씩 들러 

유일한 간식을 훔쳐 먹곤 했는데 

라면 종류마다 씹는 느낌이나 맛이 

조금씩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감이 더 바삭한 것과 덜 바삭한 라면

면이 조금 굵은 것과 가는 라면

맛이 밍숭한 것과 달짝지근한 라면 등

할머니는 그때부터 생라면의 오묘한 맛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할머니가 바깥 일 하실 때 몰래 들어가 

조금씩 맛 보면서 ‘아 이번엔 00라면 이구나’

혼자 맞춰보기도 하고 너무 많이 먹었다 싶으면

얼른 사다가 중간만큼 채워 넣기도 했다

아마 나의 발칙한 속임수를 진작 눈치채셨을 것이다   

  

라면 끓일 때 가끔 생라면 한 귀탱이를

쪼개먹다 보면 여전히 할머니 생각이 난다

지금은 할머니도 옛 집도 모두 사라지고 

슬금슬금 들어가서 할머니 라면을 

슬쩍 집어먹던 옛 추억만 덩그러니 남았다   

    

P.S 지금도 라면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손쉬운 간식인 것 같다

가끔씩 생으로 먹어도 바삭함과 고소함에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고 기분도 좋아진다 

오늘 저녁엔 추억을 곱씹으며 라면땅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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