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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Aug 12. 2024

짧고 굵은 3일간의 휴가

아이들 마음대로!

사무실 안에만 있어도 가끔 땀이 송골송골 나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마다 내리쬐는 햇살은 얼마나 뜨겁고 더울지 가히 상상이 안됐다. 그래도 나는 어디든 기회만 생기면 항상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나 남편이나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어도 이 더운 여름에는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아 그냥 집에서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은 채 맛있는 거 사주면서 가만히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휴가라고 생각했다.


남편회사에서는 직원들 복지차원으로 몇 곳의 호텔과 업무협약을 맺어 매월 추첨으로 숙박을 지원 해 주는 이벤트가 있다고 진즉부터 들은 바가 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우리와는 멀고도 먼 다른 사람들 얘기라고 생각했었는데 8월 초에 갑자기 '경주 00호텔 2박(금.토)'에 당첨되었다고 한다. 

사실, 8월 말에 다른 여행이 예정 되어 있어서 올 여름 휴가는 여러모로 살짝 건너뛸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스케줄이 생겨버렸다. 그렇다고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내 직장에서는 주말에 청소용역과 내부 공사가 예정 되어 있어서 당초 초과근무를 할 계획이었으나 어쩔수 없이? 다른 분께 부탁을 드리고 급한대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경주 근처 가 볼 만한 곳이나 맛집 등을 찾와봤다.전날 준비물을 미리 챙겨두고 혹시 빠진 물건이 있는지 메모 해 둔 것을 여러 번 체크하면서 짐을 챙겼다. 

며칠 전에 작은 아들이 물놀이 하러 간다면서 수영복도 없이 덜렁덜렁 몸만 갔던 것을 기억하며.


애들 셋과 휴가 일정을 맞추기는 별따기보다 더 힘들다. 

큰아들은 학사장교로 졸업해서 여전히 장기 복무 중이라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고 ROTC로 부산해양대학교를 다니던 둘째는 2년 동안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다가 올 3월에 귀국해서 학교도 그만두고 다시 군대를 가기 위해 대기 중이라 그나마 당분간은 같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막내 딸 역시 방학 때마다 ROTC 입영훈련을 받는데 저번 주에 마지막 교육이 끝나긴 했지만 대학 졸업반이고 취업시험 준비 중이라 겨우겨우 부탁해서 오랫만에 같이 여행 하기로 했다. 


대구에 있는 딸애를 데리고 가야해서 목요일 오후에 일찍 출발했다. 

우리의 휴가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건 푸른 하늘에 펼쳐진 여러 모양의 구름들이다. 매년 여름 휴가를 떠날 때마다 바람에 실려 떠다니는 구름을 보면서 설레임과 기대를 잔뜩 실어 보냈던 기억이 아련하다. 

안동휴게소에서 특산품인 안동고등어와 돈까스, 라면으로 간단한 저녁을 떼우고 붉게 물든 석양을 뒤로하고  대구에서 저무는 하루를 보냈다.


휴가 첫날 아침!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났으나 밤새 공부한 딸애와 밤새 핸드폰 보느라 늦게 잠든 남편과 아들에게 좀 더 잘 시간을 내어주고 같이 뒹굴거리다가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는 핑계로 짐을 챙겨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차의 앞자리는 항상 우리 부부 자리였으나 이제는 애들도 다 커서 운전 할 수 있으므로 아예 맡겨놓고 뒷자리를 차지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생활 모습이 조금씩 바끠어 감을 느끼며 그저 흐뭇하게 바라본다. 


최근에 딸애와 둘이 여행을 갔는데 나름 챙겨준다고 이래라 저래라 했다가 서로 기분만 상한 기억이 있어 '다 큰 애들에게 더 이상 잔소리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지켜봐 주고 큰일 아니면 구지 참견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상대방 의견을 존중 해 줘야 서로 편하다는 것을 함께하면서 배웠다.

이번 휴가의 모토는 '아이들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듣고 싶은 음악까지 모든 권한을 애들에게 맡기고 그냥 따라나선다.

사방에 지열이 가득 해 가만히 서 있어도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발걸음은 한껏 가벼웠다.

팝송인지 케이팝인지 모를 최신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뜨거운 여름을 나눈다. 

장마 뒤끝이라 거북이 등껍닥처럼 쩍쩍 갈라진 마른 흙바닥이 아니라 구비구비 작은 물줄기와 시원한 바람과 자신의 나뭇가지를 넉넉히 펼쳐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준 나무들 사이에서 잠깐씩 땀을 식힌다.


우선은 남편이 최근에 본 영상 중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해서 '경상북도 영주 무섬마을'로 향했다. 

목적지를 찾아가는 동안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지금이야 도로가 뻥뻥 뚤려서 금방 찾아 갈 수 있지만 옛날 같으면 산도적을 몇 번 만나도 만나겠다 싶은 오지 중에 오지였다. 


드디어 도착!

마을이 강물에 빙 둘러쌓여 있어서 처음에는 물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물섬마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섬을 잇는 외나무다리도 유명하지만 마을 안은 100년이 넘도록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오래된 전통가옥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너무나 고즈넉하고 평온한 모습이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마을을 연상케 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남편이 '영상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많이 들어본 적 있는 이미자의 ‘아씨’라는 곡을 불러줬다.  '꽃다운 나이에 아무것도 모른 채, 오직 님 따라 꽃가마 타고 시집와서 살다가 삶이 끝나서야 비로소 돌아가는 길이 서글프다' 라는 노랫 가사가 한 여인의 기구한 일생과 애환을 너무나 잘 표현한 것 같아 마음이 짠하면서 애잔함이 전해졌다.


- 이미자의 '아씨' -


옛날의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 님 따라서 시집 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옛날의 이 길을 새색시 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던 길     

어디선가 저만치서

뻐꾹새 구슬피 울어대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늦은 저녁을 먹고 드디어 경주 불국사 근처에 있는 호텔에 입성! 

다행히 전망 좋은 방이어서 밤 늦게까지 야경도 좋았다.



다음 날 아침,

어제 장거리 운전으로 아이들이 피곤할까봐 휴식시간을 주고 남편과 아침 산책을 나섰다. 

주변에 골프장이 있어 이용객들도 많았다. 아무리 '이열치열'이라고 해도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스포츠를 즐기다니 참 대단해 보였다. 

한가지 알게 된 사실! 골프가방과 간단한 소지품을 싣는 1인용 카트가 있는데 직접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전환이 되면서 주인을 졸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새로웠다. 물론 필드에서 골프를 치시는 분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처음 본 나에게는 참 좋은 세상이다 싶으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신기하고 새로웠다. 


식사는 근처에서 맛집을 검색하여 점심과 저녁을 챙겨먹었는데 밥 값은 무조건 남편과 ‘가위바위보’를 했다. 

몇 번을 내가 이겨서 져주려고 대충 내는데도 또 이긴다. ‘왜 계속 보 만 내냐?'고 묻는데 내가 '보'내면 자기는 '가위'내면 되는거 아녀? 괜히 잔머리 굴리다 계속 놓고 성질 부리기는~  


경주에서는 불국사 주변을 구경했다.

경주에 갔으니 불국사나 석굴암을 들릴거란 예상을 깨고 아이들이 원하는대로 황리단길도 가고 대왕릉을 잠시 들르고 오후에는 감포항에 들렀다. 앞쪽은 깊은 바다였으나 반대쪽으로 넘어가니 등대 아래로 앝은 곳이 있으면서 바닷속이 훤히 드러나 보여 작은 아이들도 헤엄칠 수 있는 해수욕장이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알 것 같은 숨은 장소를 지나 아래로 쭉 뻗은 길목엔 여름을 즐기기 위한 젊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진짜 여름다웠다.    


중간에 소나기가 잠깐 다녀갔다. 온도가 조금이나마 떨어져서 좋았지만 여기저기 구경하고 돌아다니기에는 성난 구름 가득한 비오는 날씨보다 조금 더워도 역시 햇볕 찐한 맑은 날씨가 더 좋은 것 같다.      

다음 날 짬을 내어 경주 천년의 숲 정원에도 들렀다. 날은 무지 좋았으나 남편을 포함한 어린 상전?들이 인상 찌뿌려가며 그늘만 찾아다니는 통에 많이 둘러보기가 힘들었다. 나중에 바람 선선해 지고 계절이 바뀔 때 쯤 다시 한번 들러도 좋을 것 같다.     

 

역시 여행의 묘미는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고 경험 해 보면서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기억을 쌓는 것이다. 

생각 해 보니 이번에 여행하는 동안 아이들 마음대로 한 것이 얼마나 있었나? 반성 해 보기도 했다.

아이들 모두 각각의 스케줄이 있다보니 앞으로 다 함께 시간 맞춰 여행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 잘 모르겠지만 두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도 많이 좋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둘째가 외국에 있어서 다른 두 아이들과 다닐 때는 둘째가 계속 생각나고 많이 미안했었는데 셋이 다 모이지 않는 이상 비슷한 상황은 계속 생겨날테고 부모는 어쩔 수 없이 또 같이 할 수 없는 아이를 항상 마음 한켠에 두고 씁쓸해 할 수 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후에라도 아이들이 모두 함께 여행 할 수 있는 시간이 자주 있기를 바래보며 다시 집으로 향해 400km를 달릴 준비를 한다. 

장거리를 갈 때는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천천히 한걸음씩 가다 보면 결국 목적지가 나오기 마련! 지루한 시간이겠지만 어느곳에서나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진리임을 다시 한번 명심하며 우리의 보금자리로 향한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생각날 때면 가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10리는 몇km일까요?' 

남편이 먼저 잘난 척을 하지만 정답은 틀렸다. 10리는 4km이다.

이번에 들은 노래들 중 재미 있는 곡이 있었는데 ‘밤양갱’ 이라는 노래가 참 흥미로웠다. 따라부를 수 밖에 없는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서로 누가 제대로 발음하는지 연습 해 보기도 했다. 

- 후렴: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디서 들어보나 싶었다.^^


짧지만 굵고 찐~~한 여름 휴가의 추억을 가득 남기고 또 새로운 날을 기약 해 본다.

올 여름도 자~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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