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언저리 오솔길에서
새벽안개가 어둠에 싸인 숲을 배회하며 무거운 침묵을 잠 재울 때
맑은 햇살은 하얀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투명한 숲에 피어나는 은빛 먼지 꽃은 안개 속에 홀연히 흩어지고
익숙한 새벽 향기 나에게로 다가와 시린 가슴으로 촘촘히 파고 들면
짙은 고독에 싸인 자작나무의 그림자는
키 큰 나무들 사이를 비추는 환한 빛줄기에 잔잔히 가라앉고
나의 한숨을 애써 외면하는 자작나무의 까만 상처만이
사르르 내려앉는 이슬 한 방울에 지친 마음을 살며시 떠나보낸다
따스한 바람 불어 엄마 품 같은 진한 그리움이 몰려오면
자작나무 긴 손을 내밀어 나의 쓸쓸한 방황을 보듬어 주고
길 잃은 바람 한 조각 덩그러니 남아 숲속을 헤매는 동안
깊은 시름과 외로움을 모두 휘감아 날려 보낸다
살포시 떨어지는 나뭇잎 춤사위에 적막한 기운도 모두 일어나
한발 한발 내딛는 힘겨운 발걸음을 나지막히 감싸 안고
아름드리 양지 사이로 빼꼼히 고개 내민 여린 꽃잎에
하늘하늘 부지런한 나비 살금살금 다가가 힘겨운 날개를 접는다
자작나무가 먼 발치에서 반짝 빛을 내며 그윽한 시선을 보내면
조그만 다람쥐도 길손 반기듯 저만치서 생긋이 눈길을 던진다
앙상한 나뭇가지만을 의지하고 힘겹게 서 있는 고독한 노송은
오래 묵은 세월의 무게를 모두 짊어진 채 마지막 긴 한숨을 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