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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Sep 07. 2024

재래시장 토박이 할머니

내가 자주 다니는 재래시장 입구 쪽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1년 365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키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각종 채소나 야채를 파시는데 얼굴표정 변화도 없이 조금은 무뚝뚝한 모습이지만 야채를 사면 덤도 많이 주시고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내가 시집와서도 봤던 기억이 있어 오랜세월 그 자리를 지키셨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누구와 사는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가게를 두고도 노점처럼 문 앞에 물건을 진열 해 놓고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쪽파나 야채 등을 쉴새없이 손질하시는 모습을 볼때마다 참 한결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게 안에 편히 있지 않으시고 구지 밖에 나와 계시는 것은 아마 지나다니는 사람들 바라보며 적적함을 달래시기 위한 당신의 하루 보내기 방법이지 않으셨을까 싶다.

요즘은 현금을 소지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노점에서도 무통장입금을 할 수 있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는 오직 현금만 거래 하셔서 많이 팔아드리고 싶어도 할 수 없이 다른 가게를 이용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야채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던 자리에는 오랜 세월의 때가 잔뜩 묻어나는 비닐포장이 덮여 있었고 빈 박스, 빈 바구니 등 할머니가 쓰셨을 것 같은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뒹굴거렸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자리를 내어 주던 텅 빈 의자 역시 덩그라니 남아 굳게 닫힌 가게를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며칠 동안은 아주머니들 몇 분이 함께 채소를 파시길래 그저 잠시 어디 가셨거니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주머니들도 보이지 않고 낡은 철문만 굳게 닫힌 채 거의 한달이 지나도록 할머니는 나오지 않으셨다. 

할머니 성격상 절대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실 것 같지 않은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조금씩 걱정되기도 했다.  

나 뿐만 아니라 이 곳을 자주 드나들었던 분들도 할머니의 노점이 계속 비어 있는 것을 보면  다들 할머니의 안부를 궁금 해 하셨을 것 같다. 

며칠 전에 시장에 갔다가 기웃거려보니 가게 문은 열려 있었는데 여전히 팔아야 할 채소들이 없었다. 

마침 안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안부를 여쭈었더니 '병원에 입원 해 계신다며 많이 위독하시다'고  했다. '안부를 물어봐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할머니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절대 쓰러지지 않으실 것 같은 오뚝이 같은 모습과 흰머리가 섞인 뽀글뽀글 동그란 파마머리가끔 꾸벅꾸벅 졸고 계시던 무료한 모습 정도인데 어느 병원에 누워 생사를 달리 하고 계시다고 생각하니 그저 남 일 같지 않았다. 불과 1년도 안되어 우리 시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렇게 생각되었나보다. 오랫동안 묵묵히 시장을 지키던 불빛 하나가 멀리 사라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무엇인가를 딱히 할 수 있는 상황도 입장도 아니지만 그저 덜 아프시고 좋은 추억만 간직한 채 자식들 시중 받으며 마지막까지 잘 계시기를 바랬다.


사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처음으로 키웠던 강아지와 고양이, 최근에 직장에서 돌봤던 햄스터와 그리고 친정부모님까지 마지막 모습을 지키지 못했다. 나의 동물들이나 우리 부모님도 다른 세상으로 가기 전 사랑하는 가족과 가장 가까운 이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이 세상 떠나는 마지막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마음 한구석에 묵혀 두었던 슬픔들이 슬금슬금 밀려온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운 더위도 한풀 꺽이고 이제 막 시원한 바람이 불어 장사하시기에도 딱 좋은 날들일텐데 정말 기적적으로 나으셔서 다시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래보지만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부디 행복한 기억과 함께 더이상 힘들지 않은 좋은 세상으로 가시길 기도했다. 

분명히 천국행 티켓을 받으실 거라 믿으며 우리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 만나시면 안부 좀 전해주시길 살짝 기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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