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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Mar 31. 2024

아기박새 '꼬꼬'

박새들의 안녕을 바라며

 - 아기 박새 꼬꼬와의 첫 만남 -

2021년도 5월쯤. 나는 전년도에 신설된 중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날씨가 꼬물꼬물 한차례 비바람이라도 쏟아질 듯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잎들이 휘날리고 

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어대던 오후에, 한쪽 구석에서 아이들 여럿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밖에 나가봤더니 참사도 이런 참사가 없었다. 

이제 막 태어난 듯 털이 듬성듬성 한 아기새들 댓마리가 사방에 흩어져 죽어 있었고 

어른으로 보이는 새들도 두 마리가 죽어 있었다. 요새 며칠 동안 건물 천장에 뚫린 환풍기 구멍 사이로 어미새가 먹이를 열심히 나르는 것을 보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마도 그 가족이 한꺼번에 몰살? 당한 것 같다. 이런 잔인한 상황을 만든 주범이 누구인지 여전히 미궁인 채, 딱 한 마리! 약간 미동은 있으나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아기새가 건물 귀퉁이에 몸을 기대어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이끌었는지 하늘이 도왔는지 다행히 내 눈에 띄어 얼른 데려다가 화장지로 감싸주고 물 한 방울 떨어뜨려 주었더니 기척을 했다. 어떻게 키울 방법도 없고 혹시라도 

다른 어미 새가 나타날까 싶어 우선 화단에 30분쯤 노출시켜 봤는데 날씨도 안좋고 

아기새도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 같아 일단 데리고 들어와 작은 그릇에 담고 지켜봤다. 따뜻하게 해 준다고 화장지로 겹겹이 싸서 놓아두니 아기새 몸에서 몇 시간 동안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빨간 거미 같은 생명체가 몸 밖으로 계속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다 온 것이 아닌가 싶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도 누구한테 맡기거나 부탁할 수도 없는 터라 할 수 없이 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우리 집에는 고양이 이오가 있어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유튜브로 이것

저것 새에 대해 검색해 보니 박새인 것 같다. 우선 기운을 차리게 해야 할 것 같아 집에 가는 길에 소고기 캔을 사고 계란을 삶고 밥알과 노른자를 으깨서 번갈아 가며 주니 

다행히 조금씩 받아먹었다. 이름도 지어 주었다. 귀한 생명이므로 무난하게 잘 크라고 가장 부르기 쉽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단어 ‘꼬꼬!’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꼬꼬와의 생활 -

 꼬꼬가 태어난 지 겨우 며칠 지난 새끼라서 새벽에도 2시간에 한 번씩 먹이를 줘야 

한다고 했다. 길냥이였던 새 식구 이오 다음으로 두 번째 아기 식구가 생겼다. 

꼬꼬는 다행히 기운이 돌아왔는지 먹이도 잘 받아먹고 귀찮을 정도로 수시로 울어댔다. 잠귀도 밝은지 작은 기척에도 ‘짹짹’ 울어대는 바람에 거의 1시간에 한 번씩 먹이를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벽에도 수시로 드나들면서 밥 챙겨주고 매번 꼬꼬 주위를 

배회하고 맴도는 고양이 이오의 동태도 밤새 지켜야 하고 그렇게 나의 이중생활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꼬꼬가 건강하게 커 가고 배고프다고 작은 입을 대빵 크게 벌리는 모습을 보거나 밥 먹고 난 후 아가 새들의 당연한 습성인 듯 똥꼬를 들고 응가를 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힘들다는 생각도 별로 안 들었다. 

계속 먹이를 챙겨줘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출퇴근할 때마다 꼬꼬를 데리고 다녔다. 

아침이 되면 밥통(쌀밥 몇 톨. 계란 으깬 것. 소고기캔 조금)을 챙겨 30분 정도 운전해서 출근하고 사무실에서는 가장 조용할 것 같은  구석에 꼬꼬를 두고 따뜻하게 조명도 

비춰줬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아기새가 좋아할 것 같은 파리나 벌레가 있는지 찾아

보기도 했는데 ‘개똥도 쓸려면 없다’ 더니 요즘은 파리 찾기도 힘들었다. 

근무하다가도 울음소리가 들리면 다른 직원에게 방해될까봐 재빠르게 가서 밥 챙겨

주고 바닥도 다시 정리해 주고 엄마새 역할 하기도 정말 만만치 않았다. 

꼬꼬가 생각보다 잘 자라줘서 집도 계속 바꿔야 했는데 처음에는 먼저 작은 플라스틱 통에 담고 종이가방에 이중으로 넣어 조심히 가지고 다녔는데 이제는 털도 나고 날갯짓을 해서 답답해할까 봐 좀 더 큰 종이백으로 바꾸고 나중에는 뚜껑 있는 큰 바구니로 

옮겼다가 결국 새장을 사서 매일 들고 다녔다. 매번 수시로 밥을 줘야 했으므로 장시간 외출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항상 꼬꼬 용품(밥통과 휴지 등)을 같이 챙겨서 차에 태우고 다닐 정도였다. 

한 번은 비빔밥집에서 밥을 먹다가 파리 끈끈이에 파리가 여러 마리 붙어 있길래 하나씩 떼어 담는 모습을 보신 여사장님이 이유를 물어보시고는 비빔밥 만들 때 생긴 못쓰는 고기 조각들을 챙겨주시며 잘 키우라고 응원해 주시는데 너무 감사했다.      


  꼬꼬의 부상 -

몇 주가 지나서 꼬꼬가 첫 날개짓 할때는 정말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이제는 제법 날아다니기도 해서 틈틈이 훈련도 시켰는데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꼬꼬의 상태가 이상했다. 날개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하면서 새장 바닥에 떨어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꼼지락거리는 것이 아닌가! 

기억을 더듬어보니 사실 전날 밖에서 점심을 먹기로 해서 바구니에 담아 들고 다니다가 차에 태울 때 바구니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구니 귀퉁이가 조금 깨졌지만 아기새는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날개를 자세히 보니 중간 날개깃 하나가 끊어져 있었다. 상태가 너무 걱정되었으나 주변에 야생조류를 치료할 만한 병원도 없는 데다가 일요일이기도 해서 여러 방법을 궁리하다 급한 마음에 SBS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가 

생각나서 부랴부랴 회원가입을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메일을 3번이나 보냈다. 

오후에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기새를 갖게 된 배경부터 시작해서 “아기새를 고치려면 일단 방송에 출현해야 하는데 괜찮은지?”라고 물으셨다. 나는 “새를 고치려면 할 수 없죠”라고 답하며 “빨리 좀 고쳐달라”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가 왔는데 

“방송에 사연을 내 보내기에는 스토리가 너무 짧은 것 같다”며 근처에 있는 야생동물병원을 찾아보라고 했다. 


 꼬꼬와의 생이별 -

다른 방법이 없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순천과 구례에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있었다. 

구례는 너무 멀어서 안 되겠고 주말이어도 혹시나 하고 순천에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사정을 말하고 새가 아프다고 하니 월요일에 와보라고 했다. 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는 조금 멀었지만 조퇴를 하고 달려갔다. 나 때문에 다시는 날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죄책감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가면서 ‘혹시 이 아이가 불구가 

되면 평생 내가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상황을 말씀드리고 나니 직원분이 하시는 말씀 “야생동물은 집에서 

키우면 불법입니다. 지금 담당 선생님이 부재중이시니 여기에 맡겨두고 가시면 오시는 대로 엑스레이 찍고 치료하겠습니다.” 

‘엥? 갑자기 생이별이 되어 버린 이 상황은 뭐지?’ 몇 주 동안 24시간 내내 붙어 다녀서 정이 잔뜩 들어버린 내 새끼 같은 꼬꼬를 두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했다. 꼬꼬를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며 남겨두고 가려니 발걸음도 잘 안 떨어지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데 지금 그 순간을 다시 생각해도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도저히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아 일단 기다렸다가 엑스레이 결과를 듣고 가겠다고 

하고 내내 밖에서 대기했다.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니 날개를 다쳐서 치료받고 있는 

부엉이부터 상처 입은 다양한 동물들이 많았다. 인간의 욕심으로 삶의 터전까지 잃어

버리고 방황하며 다쳤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한참 후 선생님이 오셔서 엑스레이 찍고 하시는 말씀 “다행히 큰 이상은 없고 날개깃은 다시 생기니 걱정 말라”라고 하시는데 정말 너무나 다행스럽고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한 가지 더, ‘꼬꼬를 너무 잘 먹인 탓에 약간 비만이어서 못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이런 웃픈 상황에서 기쁨에 겨워 우는 모습을 보시고는 ‘종종 잘 지내는 동영상 보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시며 방생할 때쯤 연락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때 다시 만나서 꼬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지' 마음먹으며 

그나마 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석양을 등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내 아들 막 군대 보낸 것 같은 허전한 마음으로 텅 빈 새장을 바라보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꼬꼬 다시 하늘을 날다 -

며칠 후, 꼬꼬를 관리해 주시는 선생님이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주셨다. 다시 비행하는 꼬꼬 모습을 보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다행히 적응 잘해서 밥도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하셨다. 정말 그 순간 아무 일 없었던 듯 잘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한시름 놨다. 

'나를 벌써 잊었을까?' 하는 아쉬움에 마음이 또 한 번 울컥했다. 


 방생 -

원래는 6월 말쯤 방생하신다고 해서 순천에 가보려고 했는데 장마가 빨리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우선 방생을 하고 장마가 오기 전에 새들도 며칠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어쩔 수 없이 동영상으로 마지막 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박새 울음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가끔 창밖에서 박새 소리가 들리면 ‘설마 꼬꼬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마음속으로 ‘친구들 만나서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하고 기도하게 된다. 

내 생애 처음 아기새와의 우연한 만남은 아련한 추억만 남기고 이렇게 끝이 났다. 

앞으로도 연한 초록빛이 가득한 5월이 되면 나의 마음을 훔쳐간 박새 꼬꼬가 계속 생각날 것 같다.     


 추신 : 그 이듬해 같은 장소에서 혹시라도 또 똑같은 사고가 발생할까 싶어 입구를 

막았는데도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서 다른 박새가 또 새끼를 낳았다. 이번에는 제발 별일 없기를 바랐는데 역시나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저번처럼 많은 수의 새들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또 한 마리 아기새가 살아남아서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경험

있는 내가 집에 데려다가 일주일 정도 케어하면서 정말 정 붙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이번에는 다행히 광주에 야생동물관리보호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주말에 데려다 주었는데 역시 이별은 언제나 적응되지 않는 감정이다.

다시는 어린 아기새에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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