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꽃 Nov 07. 2024

둘째 아들 군 입대

무소식이 희소식!

붉게 물든 낙엽 한 잎 살포시 떨어져도 쓸쓸함이 가득할 것 같은 잔뜩 흐린 가을 날에 둘째 아들이 드디어 군대를 갔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2년을 보내고 와서 다른 친구들보다 군 입대가 늦었는데도 조금 오랫동안? 쉬는가 싶더니 결국 추위가 시작되는 11월 군대에 들어가기 바로 전, 2박3일 동안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짧은 여행을 하고 마지막 날 새벽까지 또 다른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긴 위로를 받았다. 

갈 길이 너무 멀어 조금 이른 아침, 잠결에 곯아떨어져 있는 아들을 겨우겨우 깨워 짐을 대충 챙기게 한 후 집을 나섰다. 비몽사몽간에 찾던 운동화가 없다고 슬리퍼를 신고 나온 아들 손에는 외국어 공부한다며 새로 구입한 두툼한 교재가 담긴 종이가방이 손잡이가 곧 떨어질 것 처럼 불안하게 들려있었고 헐렁한 추리닝 바지에는 화장지, 귀마개?, 아이팟 등 주머니가 볼록해지도록 자잘한 소지품들이 주섬주섬  많이도 담겨 있었다. 나이도 있는데다가 어린 상사들에게 괜히 트집 잡힐까 싶어 그렇잖아도 걱정인데 아들은 여전히 태평하다. 


저번 주 일기예보에서는 이번 주 내내 ‘맑음’이라고 했었는데 낮은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가득하고 운행 중에는 하나 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들 고생하러 가는 길에 비조차 눈치 없이 더하는 거 같아 속상할 뻔했는데 다행히 윗 지역으로 올라갈수록 날이 개었다. 평소 같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가을을 만끽하며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과일, 샌드위치 등 준비해 온 간식을 맛있게 나눠먹었겠지만 오늘은 남편도 마음이 무거운지 먹을 것을 사양한다. 나 역시 아들이 추위에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아 먹거리를 두고도 배 고픈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짙은 구름들 사이로 조금씩 얼굴을 내민 환한 햇살을 마주하니 그나마 아들이 힘든 훈련 잘 견뎌내고 밝고 건강하게 제대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남편도 무슨 생각이 많은지 입을 꼭 다문 채 간간히 기침을 섞어가며 애먼 담배만 피워대다가 아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인지 아빠의 군대 경험을 섞어 건강하라는 당부 말과 함께 아무튼 즐기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막내딸이 시간내서 “오빠 건강하게 잘 다녀와~” 라며 전화를 했더니 “응, 그래” 라는 답변만 하고 핸드폰을 넘겼다. 짧은 한마디이지만 직접 전하지 못한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으리라! 

현재 군대에서 장교로 4년째 복무 중인 큰아들 역시 카톡으로 “잘  다녀오거라~” 하고 한마디 딸랑 보태고 만다. 아직도 복무기간이 3년이나 남은 큰아들도 할많하않!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부대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이발소에 먼저 들렀다. 묶어도 될 만큼 긴 머리를 아주 짧게 깎아서 어색한지 가을 햇살이 무척 뜨겁다며 계속 긁적거렸다. 다행히 애지중지하던 머리 때문에 마음 상해하는 것 같지는 않아 걱정을 덜었다. 점심은 국밥을 먹고 싶다고 했으나 근처에 마침 고깃집이 있어 소고기를 사줬다. 오늘 입대 할 다른 가족이나 형제 또는 친구들도 여럿 있어 식당이 많이 붐비고 시끌벅적했지만 아마 속마음은 대부분 비슷하리라 생각되었다. 아들에게 내 몫의 고기와 밥까지 다 내어주고 그 와중에 남편과 점심내기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내가 졌다. 아들이 잘 먹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부대 운동장에서 가족과 사진 찍기, 사랑의 손편지 쓰기, 열쇠 만들기 등 이벤트 행사를 했다. 아들이 잠시 화장실 간 사이에 남편과 함께 아들에게 보내는 깜짝 손편지를 썼다. 나는 벌써 아들을 두번째 군대에 보내는 입장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쓰려고 했는데 옆에서 어느 어머니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훌쩍이는 바람에 나도 괜히 눈물이 났다. 슬쩍 눈물을 훔치며 진작부터 해 보고 싶었던 캐리커처 사진도 찍었다. 생각보다 사진이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아졌다. 

간단한 입영식을 마치고 다들 파이팅과 아들의 이름을 외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눈물을 펑펑 쏟는 아이들도 있었고 부모들도 차마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지막에 부사단장님이 60일 동안 따뜻하게 잘 지내고 따뜻한 밥 잘 먹이며 훈련 잘 받게 할테니 걱정말라고 하시는데도 역시 군대라는 또 다른 세상에 내 아이를 홀로 남겨두고 가려고하니 발걸음이 많이 무거웠다. 요즘은 남편 군대 다닌 시절보다 생활 환경도 훨씬 나아지고 통화도 자주 하게 해주고 훈련받는 모습도 영상으로 가끔씩 볼 수 있으니 잘 적응하고 건강하기만을 바랬다. 

큰아들이 군대 갈 때는 코로나19 때문에 부대 입구에서 손만 흔들며 배웅을 했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경험은 우리도 처음이라 걱정이 앞서고 마음 한켠이 허하면서 약간 슬프긴 했지만 그냥 '잘 적응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겠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직접 입영식 과정을 지켜보고 훈련소로 줄지어 들어가는 뒷모습만 남긴 채 돌아서려니 떠나보내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오면서 짠함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온 가족도 보였다. 시아버님이 생전에 살아계실 때도 군대 얘기를 자주 하셨었는데 어느 일행도 아니나 다를까 함께 동행하신 할아버지의 군 경험에 관한 일장연설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우리 시부모님도 살아계셨다면 분명 어려운 발걸음 함께 하시며 백번은 들었던 것 같은 군대 얘기를 또 한번 읊으셨으리라 생각되었다. 


오늘 하루만 차로 660Km, 약 7시간 정도를 달리고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조금 덜렁이인 아들이 남겨놓은 어수선한 방과 여기저기 나뒹구는 옷들을 정리하며 평상시에 자주 사용하는 비염약과 안경닦이 등 '간단한 필수품이라도 챙겨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 습관 때문에 더 힘들지 않을까 싶은 염려와 그래도 군대 갔다오면 정리도 잘하고 건강도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담아본다.

남편은 먼 길 운전하면서도 '이 시간이면 밥 먹었겠지?, 자고 있겠지?' 하며 아들의 남은 하루 일과를 떠올렸다. 늦은 시간 집에 도착해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내 멍때리다가 저녁밥도 생략! 군대 들어간 아들 덕분에 1Kg는 빠졌겠다. 나는 점심 때도 별로 못 먹어서 조금 찔리긴 하지만 잘 챙겨먹었다.  

군 입대 첫날 밤 아들은 잘 자고 있는지, 기온이 점점 떨어진다는데 추위에 훈련받느라 고생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계속 쌓여갔다. 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이겨내고 있을거라 믿으며 멋있는 싸나이!가 되어 돌아오기를 열심히 응원하고 기도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잊혀진 계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