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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수채화를 가르치는 아동사서

아동사서는 팔방 미인

세상의 모든 포지션이 어느 정도는 generalist이면서 어떤 업무는 specialist가 되어야하는 것이겠지만 특별히 아동사서는 팔방미인처럼 종류별로 이것저것 다 잘해야합니다. 사서란 직업은 모든 것을 다 잘 알고있는 사람이 아니고 남들보다 빨리 배울 수 있고 그렇게 배운 것들을 도서관 사용자에게 잘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합니다. 



현재 뉴저지는 높은 백신접종률로 조금씩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근처 많은 도서관들이 제한적이나마 운영을 시작했는데 저희 도서관은 아직 문을 열지는 않았어요. 대신 Zoom으로 진행하던 많은 프로그램들을 야외에서 진행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다행히 저희 도서관 건물 바로 옆에 넓은 잔디밭이 있고 나무가 있어 그늘도 있기 때문에 텐트를 치지 않고도 프로그램을 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화요일 오전에는 0세~3세 아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토리타임을, 오후에는 3세~5세를 대상으로 하는 스토리타임을 진행하고 있고, 목요일 오후에는 Crafternoons라는 공작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Crafts와 Afternoon을 합쳐서 "공작활동을 하는 오후"라는 뜻으로 마음대로 만든 말이예요.) 


Crafternoons는 팬데믹 기간동안 꾸준히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어요. 작년 3월부터 도서관이 문을 닫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할때도 진행했어요. 그땐 어느 누구도 외출을 안 하던 때라 집에 있을만한 색종이로만 무언가를 만들어야해서 아이디어를 쥐어짜느라 고생이 많았어요. 덕분에 Origami의 달인이 되었지요. 


작년 9월부터 직원들이 도서관에 출근해서 Curbside Pickup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원하는 책을 전화나 이메일로 신청을 받고 도서관 건물 바깥에서 픽업할 수 있게 해 주는 서비스예요. 그때부터는 Crafternoons의 재료를 일주일 전에 미리 준비해서 참여자들이 픽업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렇게 픽업한 재료로 Zoom에서 만나 같이 공작활동을 하는거예요. 물론 20개의 재료 kit를 매주 준비해야하는건 번거로운 일이지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프로그램이 더 재밋어졌어요. 




5월부터는 야외에서 공작활동을 진행하게 되어 특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수채화를 하기로 한 것이죠. 아니 물감놀이가 무어 그리 대단한거냐고 하겠지만 요즘 집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물감놀이를 하게 하나요? 치우는거 귀찮다고 아마 못하게 할 꺼예요. 그렇다고 학교 미술시간에서 할까요? 저희 타운은 일년 내내 Zoom으로 수업했었어요. 미술시간은 일년 내내 없었다고 봐야할꺼예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건 사용자의 관심과 필요를 언제나 고려해야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감놀이가 고프겠구나... 그런 마음으로 하기로 한 것이죠. 매주 10~12명의 아이들이 사용한 팔레트와 브러쉬를 씻어야하는건 저에게도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예요. 거기다 비닐로 된 방석을 탁자 대용으로 쓰고 있는데 그건 닦을때 엄청 힘들거든요. 다음주부턴 팔레트 대신 종이접시에 물감을 주고 다 쓰고 나면 그냥 버릴 생각이예요. 어제 팔레트 열심히 씻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종이접시 덜 쓰려고 팔레트 썼는데 이거 씻느라 사용하는 물낭비하느니 종이접시 써야겠다고요.


물감놀이의 첫 날은 빨대로 불기 활동을 했어요. 제 마음같아선 그냥 추상화로 진행하고 싶었는데 구상미술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갑자기 잭슨 폴록이 되어보라고 하면 당황해할것 같아서 코너에 물감을 불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붙인 종이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어요. 물감의 농도에 따라 퍼지는 정도를 느껴보고 또 여러 색깔들이 섞이는 것에도 재미를 느껴보는 활동이었어요. 

나의 샘플

미술활동 할때 되도록 샘플을 안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 활동은 샘플이 없이는 아이들이 당황할 것 같아서 어쩔수없이 샘플을 보여주었어요. 사실 일년동안 했던 공작활동이 Product-focused Art일 수 밖에 없었어요. 같은 재료를 나누어주고 나의 설명에 따라한 후 결과물을 Zoom 화면으로 보여주는 식이니까요. 그런 방식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갑자기 Process-focused Art를 하라고 하면 낯설어할꺼 같았어요. 앞으로 몇 주동안 수채화를 그릴꺼니깐 익숙해질때까지 천천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나의 예상보다는 미술활동이 빨리 끝났어요. 왜냐하면 나의 의도와는 달리 아이들이 물감에 익숙해지고 다양한 체험을 하는걸 어려워하더라고요. 대충 몇 번 불어보고는 다 했다고... 그래서 첫 수업은 (제 기준에서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다음주에도 같은 학생들이 참석했으니 완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죠?




두번째 날에는 크레용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 물감으로 색칠을 하는 활동을 했어요. 크레용과 물감이 번지지 않는다는 성질을 가르쳐주었어요. (Crayons resist watercolors.) 이번엔 정말로 샘플이 없이 밑그림도 자신이 그리고 싶은 아무거나 그리라고 했어요. 팔레트에 기본 색깔을 주고 붓을 하나만 줘서 붓을 씻고 휴지로 닦고 다시 원하는 색에 붓을 뭍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어요. 이런 기본적인 것을 모른단말야? 라고 하기엔... 글쎄요? 요즘 공교육에서 물감으로 미술활동 안 할꺼 같은데요? 


나무 그늘 아래 바람은 솔솔 불고 제가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면서 수채화를 그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님들의 만족도가 높았어요. 한 엄마가 그러더군요. "Perfect ambience for little impressionists"라고요. 




세번째 날에는 primary colors를 섞어서 무지개색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어요. 팔레트에는 빨강, 노랑, 파랑색의 물감만 주고 종이접시를 줘서 물감을 덜어서 주황, 초록, 남색과 보라색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어요. 

7세 아이의 무지개 색칠하기

지난주에 배운대로 크레용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무지개색을 만들어서 색칠하면서 아이들은 이제 수채물감에 많이 익숙해졌어요. 농도도 조절할 줄 알게 되었고 붓질도 익숙해졌어요. 

3세 아이의 작품, 붓터치가 대담하지 않나요? 제가 Little Gogh라고 했네요. 




네번째 수업인 이번주에는 수채물감으로 "추상화"를 그려보기로 했어요. Abstract Art에 대한 개념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일단 저의 샘플을 보여주었어요. 그리고 물었죠. 내 그림을 보고 느껴지는 기분이 어떤지? 이 그림을 그렸을때 나(화가)의 기분은 어땠을꺼 같은지? 다양한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각자 자신의 기분대로 작품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패턴인 동그라미는 휴지심에 검정 물감을 뭍혀서 도장찍듯이 찍은거고요. 붓 대신 면봉을 이용해서 동그라미 안을 색칠하게 했어요. 아이들에게는 지난주에 배운대로 색깔을 섞어서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보도록 했고요.

나의 샘플


 미술선생님이신 분들이 보면 비웃으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학교와 가정에서 해 보지 못했을 기회를 주었다는 것으로도 자족합니다. 초등 1학년 학생이 한시간을 집중해서 작품을 완성하면서 그러더라고요. "I haven't used watercolor in such a long time." 


이제 두 세션 더 남았어요. 아까 말한대로 아동사서는 아이들보다 살짝 앞서 배운 후 친절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어른이니깐 주초에 빨리 배워서 목요일에 써 먹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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