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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rtured Librarian 후천적 아동사서

처음부터 타고난건 아니었지만... 아동사서로 만들어져간다는 것

어제 한 학부모와의 통화 끝에 "엄마들 모인 곳에서 다들 너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 알고 있어?" 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현재 도서관으로 옮겨온 후 3년 동안 내가 진행하는 스토리타임에 대한 좋은 반응들을 간접적으로 듣곤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칭찬에는 황송했어요. 




대학원에서 도서관학을 공부했지만 정작 도서관에서 근무를 하는것은 교실에서 배운 것과는 달랐어요. 이미 완성된 사람을 기대하는 건 아니었기에 운좋게 취업이 될 수 있었지만 사서로서 가져야 할 구체적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특별히 요즘 공립도서관에서는 Early Literacy라고 해서 0세~5세까지의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나이 또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채 일을 시작한지라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습니다. 첫 직장이었던 Queens Library에서의 첫 Toddler Time (유아대상 스토리타임)에서 저는 동요를 단 한 곡도 부르지 않고 책만 연달아서 3권을 읽어주었어요. 도서관 프로그램에 익숙한 엄마들이 아마 뭥미? 했을꺼예요. 


미국에 태어나서 미국 어린이집을 다녀보길 했나... 내가 아기가 있어서 어린이집을 보내봐서 어떤지 알기를 하나... 그렇다고 유아교육 수업을 단 한 과목이라도 들어보길 했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동요를 불러야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어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당시 Queens Library의 인사과 운영이 엉망이었다고 말할수있겠죠. 처음부터 경험이 있는 사람을 뽑던지 아니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뽑고 업무 적응 교육을 잘 시켜주든지 했어야하는데 말이죠. 


너무나 다행히 첫 도서관의 디렉터가 전직 아동사서이셨던 분이라 나의 멘토가 되어주셨어요. 말도 안되는 나의 Toddler Time을 두 번을 보신 후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르시더니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셨어요. "Where is Thumbkin?"이라는 nursery song이었어요. 직접 부르시면서 finger play (율동)도 해 주셨어요. 

https://youtu.be/bRNDu3O2VQY


첫 도서관이 정말 정말 작은 도서관이었어요. 큰 방 하나에 어른과 아이들의 공간을 분리해놓은 도서관이었죠. 제가 아이들 공간에서 스토리타임을 하면 어른 공간의 책상에 앉아있던 디렉터가 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도서관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죠. 덕분에 디렉터가 저의 엉터리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 날 이후로 Early Literacy와 관련한 공부를 혼자하고, 쉬는 날에는 근처 도서관의 스토리타임에 참관을 하러 가기도 했어요. 유투브가 없었으면 아동사서로 버티지 못했을거예요. Nursery song을 유투브에서 배웠답니다. 한국 동요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어릴때 불러보지 못한 영어 동요를 나이 들어 외우려니 어찌나 힘들던지요. 얼마나 많이 흥얼거리고 연습했는지 몰라요. 




남편의 이직으로 뉴저지로 이사를 하고나서 뉴저지의 도서관의 사서 포지션에 지원했지만 대학교까지 한국에서 공부한 이민1세대라는게 뻔히 드러나는 레쥬메로는 인터뷰 기회조차 오지 않았어요. 다행히 뉴욕공공도서관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뉴욕공공도서관 취업기는 다음에 천천히 써 보기로 하지요.) 


감사한 일은 제가 뉴욕공공도서관으로 옮기자마자 한 독지가의 6 million 달러의 버짓으로 "Early Childhood Education" Team이 생겼다는거예요. 당시 뉴욕시 교육청에서 "Preschool for All"이라고 해서 preschool을 무료로 제공하게 되었고 그 정책에 맞춰 도서관도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강화하다보니 아동사서들의 역량 또한 강화해야하는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새로 뽑힌 아동사서들에 대해 대대적인 교육이 진행되었고 덕분에 많은 professional development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 받고 공부하는 짜릿한 일이었죠. 


개인적인 노력도 많이 했어요. Facebook의 아동사서 그룹에 가입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 또 질문을 하기도 하고 친절한 아동사서들의 블로그에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것도 다른 사서들에게 배운 경험을 그들처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이민1세 사서의 결정적인 컴플렉스인 스토리타임을 잘 해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더니 이제는 이 근처 도서관 사서들 중 유아 프로그램을 잘 하는 사서로 알려졌어요. 매주 진행하는 스토리타임에 오는 부모들이 내가 하는 프로그램이 돈을 내고 가는 아기학교보다 더 좋다고 칭찬을 해 줍니다. 유치원 선생님으로 은퇴하시고 손녀를 돌보시는 할머니의 폭풍 칭찬은 황송하면서도 뿌듯합니다. 




처음부터 뼈 속까지 아동사서는 아니었어요. 그러기엔 언어라는 한계는 태생적인 아킬레스건입니다. 눈물을 끝까지 참다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외투도 벗지않고 현관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대학원 다닐때 요즘 트렌드인데다 영어는 업무를 위한 수단으로 말이 통할 만큼한 하면되는 archive나 data management를 전공했어야했는데 하필 나는 왜 children's librarianship을 전공했을까? 후회한 적도 있었죠. 물론 어떤 유망직종을 염두해두고 간게 아니라 미국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 아동문학을 더 알고 싶어서 순수하게 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 어쩌다 운좋게 취직을 하게되어 아동사서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만들어져가고 있는 중이지요. 그리고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native처럼 잘 할 수는 없을꺼예요. 


"영어가 mother tongue이 아닌 나는 이 분야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웃라이어가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단 말야!" 


사지를 허공에다 흔들어대며 아이처럼 우는 내 옆에 가만히 누워서 남편이 한 마디 했어요. 






"꼭 아웃라이어가 되어야 해?" 






"헐"





"매일 보람있고 행복하면 되는거지."






너무 악착같이 욕심을 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주저하지 않고 또 배운 것을 적용하는데 게으르지 않는 아동사서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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