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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권리임을 알려주는 책

"How I Learned Geography" Uri Shulevitz

 

책 표지를 열자마자 처음 보게 되는 그림은 한 가족이 붉은 하늘 아래 빈손으로 도망을 치는 장면입니다. 전쟁 난민캠프의 열악한 환경에서 여러 가족이 한 집에 모여서 살게 된 주인공 소년은 빵을 사러 장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빵 대신 두루마리 종이를 가지고 오자 화가 납니다. 그날 저녁을 굶은 소년에게는 이웃집 아저씨의 빵을 씹는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습니다. 도대체 아버지는 왜 그러셨을까요? 




Uri Shulevitz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이 책은 2009년에 칼데콧 아너상을 받은 책입니다.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기에 책의 뒤 작가의 노트에는 자신이 4세이던 시절부터 시작된 난민의 경험을 써 놓았습니다.




소년의 아버지가 시장에서 가져온 것은 벽을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세계지도였습니다. 저녁을 굶고 아버지에게 화가 난 채로 잠들었던 다음날 아버지는 누추한 집의 한 쪽 벽에 지도를 걸어놓습니다. 소년은 지도를 보자마자 매료됩니다. 장난감도 없던 소년은 하루 종일 지도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어쩌다 종이와 펜이 생기면 지도를 따라 그리기까지 합니다. 


지도에 적힌 낯선 지명들은 노래의 운율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운율을 따라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 그 작은방 안에서 세계여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막을 건너고 해변을 지나 눈 덮인 산에도 오릅니다. 열대 과일을 실컷 먹고 열대 나무 아래에서 쉬기도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빌딩 숲에서 수많은 창문들의 개수를 세어보기도 합니다.


상상 속에서나마 지도를 통해 세계여행을 하던 소년은 배고픔을 잊어버리고 빵 대신 지도를 가져왔던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이야기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배경입니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나 이주가 대중적이지 않던 시기에 자신의 고향을 원치 않게 떠나 낯선 곳에서 미래를 예상치도 못한 채 살아가던 한 가장이 시장에서 세계지도를 봤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세상은 이리도 크고 넓은데 나와 내 사랑하는 가족이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곳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빵 대신 지도를 사겠다는 결정을 하느라 한참을 고민했을지도 모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에게 오늘 저녁 빵 한 조각을 먹일 수는 없겠지만 아들에게 오늘의 비참한 인생이 끝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너의 미래는 이 세계지도처럼 크고 넓고 미지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단다. 결코 현재의 상황에 낙심하지 말아라. 우리는 곧 난민캠프를 떠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지도에 있는 어느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을 거야. 그때 너의 꿈을 맘껏 펼치렴." 


소년은 한참을 지나서야 빵 대신 지도를 사 가지고 왔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둘 중 하나밖에 살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여러 곳을 데리고 여행을 갑니다. 여행의 끝은 돌아올 home sweet home이 있어서 더 좋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책이 쓰인 1940년 뿐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막막한 심정으로 낯선 땅으로 이주한 난민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들에겐 여행은 즐겁다기보단 불안한 경험입니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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