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성모마리아 관음상, 길상사)
1916년 일제 강점기 시절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15살에 시집을 갔으나 병약한 남편이 죽자 먹고살기 위해 가무(歌舞)와 궁중무(宮中舞)를 배워 기녀(妓女)가 된다. 미모를 겸비한 그녀는 글쓰기, 그림에도 재주가 있어 잠시 일본 유학도 다녀온 신지식 여인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에 참석하여 키 크고 잘생긴 남자 영어 교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결혼을 하려고 했으나 남자의 집에서는 여인이 기녀 출신이라 강력하게 반대한다. 3년 동거 후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만주로 떠나자고 한다. 그러나 여인은 남자의 앞길을 막을 수 없어 이별을 하고 남자 혼자 만주로 간다. 그 후 해방이 되어 남자는 고향인 함흥으로, 여인은 서울로 왔으나 전쟁으로 인해 둘은 영원한 이별을 한다. 서울로 온 여인은 사랑의 아픔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재산을 모아 서울의 3대 요정의 하나인 ‘대원각’의 주인이 된다. 그녀가 사랑했으나 이별을 한 그 남자는 시인 백석(白石)이다. 이후 세월은 흘렀으나 여인은 백석을 잊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희어지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리움은 더해갔다. 일평생 가슴에 묻어 둔 지고지순한 사랑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1997년 2억 원을 출연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한다.
그리고 ’ 백석_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라는 회고록을 남긴다.
“내 나이 어언 일흔셋, 함께 살던 그 시절의 추억은 내 생애의 전부, 내 가슴속의
그리움은, 쏟으려 해도 쏟기지 않는 물병,
서러움만이 저절로 쏟아져 나온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여인의 이름은 김영한 (1912~1999년)이며 기명은 진향(眞香), 아명은 자야(子夜)이다. 1985년 그녀는 당시 1천억 원 가치의 대원각 요정을 ’ 무소유‘ 책의 저자인 법정 스님에게 부탁하여 대원각이 ’ 길상사(1997년)’라는 이름의 사찰로 재탄생한다.
길상사가 개원한 뒤 어느 날 일간지 한 기자가 여사에게 “1천억 원대의 재산을 기부한 것이 아깝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나의 재산은 그 사람 (백석, 白石)의 시 한 줄만도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사는 그 말을 하는 동안 첫사랑 백석을 떠올리며 행복해했다. 비로소 여사의 가슴속에 백석의 시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회고록에서 ‘백석의 시는 쓸쓸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라고 한다.
근대 한국의 여인들의 가슴속에는 한이 서린 삶을 살아왔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 형제 뒷바라지 하며 인생의 초년기를 지냈고,
결코 사랑의 마음이 긴가 만가 한 얼떨떨에 남자 만나 결혼 후 남편과 자식들 공양하며 좀 편안한 세월 오려나 하니 손자, 손녀 기저귀 갈아 주고, 양가 부모님 병치레하다가 허리에 디스크 오고 남편의 간병인이 된다.
이제 먼 길을 걸어온 현실에 첫사랑의 기억은커녕 숨쉬기도 어려워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원각’ 여인처럼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만 가슴에 품고 살다가 노년의 마지막 사랑을 맺는 것이 더 좋았을까?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현재 살아 있는 것도 다행이려니 생각하며 과거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우리의 마음을 독서와 글로 달래고 경작해야 한다.
매주 만나는 수필 반 문우들의 글을 통한 이야기들의 가치가 ‘백석’의 시 한 줄보다 못하지는 않다. 백석의 시 한 줄이 어느 여인에게는 큰 위안이 되듯이 우리의 글은 진정 사랑의 가치가 있다. 한 줄 한 줄의 글이 가끔 한 번씩 목말랐을 때 그리움으로 만난다. 매 학기 새로운 얼굴의 선생님들 뵙고 그들의 인생살이의 글을 보면 가슴이 벅차고 새삼 인연의 희열을 느낀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는 거야
눈 속의 눈으로 보니
나무 그림자에도 벚꽃이 피고 지는듯하다 (어린 왕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