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사지(敬天寺址) 10층 석탑

by 김상기

2013년 MBC 51부작 드라마 제목 “기황후” 아시죠? 고려시대에 원나라에 공녀(貢女)로 끌려가 황후가 된 역사 이야기. 당시 그녀가 원나라 황후가 되자 그녀의 친정 기씨 식구들과 그녀를 발탁해서 보낸 관리의 세력이 원나라 황제, 기황후, 황태자의 만수무강과 원나라 번영을 기원하는 탑을 고려 충목왕(1348년) 4월에 경기도 개풍군 부소산 경천사에 10층 석탑(石塔)을 건립한다. 탑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한국적 이미지 불탑과는 달리 조각이 쉬운 회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희귀성과 화려한 장식의 무늬가 새겨져 있어 미적 가치가 높다. 경천사는 그 후 고려 왕들이 직접 방문한 유서 깊은 사찰이지만 조선시대에 절은 없어지고 탑만 남는다. 이후 1907년 조선말에 고미술 방면에 조예가 깊은 일본 관료가 당시 황태자 순종의 결혼식에 특사로 왔다가 경천사 탑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고종에게 달라고 요구를 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경천사에 가서 탑을 해체하고 탈취한다. 주민들이 항의하자 순종이 가져가라고 했다고 사기 치고, 심지어 권총으로 위협하며 결국 일본으로 가져간다. 국력이 너무 쇠약한 조선의 관료들은 묵묵부답이다. 이 약탈 사실을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이 1907년 3월 7일 대한매일신보 논설을 통해 일본인 ‘다나카’ 실명을 거론하며 석탑 약탈을 폭로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약탈이 아니고 기증받았다고 우긴다.당시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 특사를 준비하던 ‘호머 헐버트’가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해 경천사지를 방문하여 현장을 촬영하고 해당 주민의 증언을 인터뷰한다. 이후 일본 신문에 '한국에서의 만행'이라는 기고문을 올리고 헤이그로 가서 이 사건을 폭로해 세계 언론이 석탑을 반환하도록 촉구한다. 마침내 석탑은 1918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당시 조선 총독은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되면 어차피 조선은 없어지고 일본 나라가 될 것으로 판단해 반환 되어도 일본 소유나 다름없다고 판단한다. 세계 여론 때문에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일본에 도착한 후 포장도 풀지 못한 채 십여 년 넘게 방치되었다가 대한제국에 돌아온다. 이런 사연으로 반환된 석탑은 해체 운반 과정에서 너무 많이 훼손되어 경복궁 회랑에 일단 보관된다. 해방 이후에는 6.25 전쟁 등의 수난을 겪다가 1960년에 서울 경복궁 뜰에 전시했으나 야외에 세워 두니 수리 복원에 사용된 시멘트가 풍화되고 대리석재인 석탑이 산성비로 부식되자 1995년 다시 해체 후 정밀 보존 처리한다. 더시 복원한 탑은 야외가 아닌 실내 공간에 보관하기로 하여 현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실내에 전시하고 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으로 불법 반출된 상태가 유지되었거나, 일본으로부터 반환된 후 원래 경천사 절터에 가져다 놓았으면 지금 우리는 높이 13.5m의 10층 석탑을 눈으로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원나라에 잘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탑이지만 너무 아름다워 일본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탑이다. 문화유산과 예술에 관심을 갖고 자주 보면 미적 감각을 통해 정신과 육체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저렴한 비용의 길이다. 특히 우울증과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교양 가득한 어르신이 되자. 중앙박물관에는 석탑 외에도 광개토왕비 디지털 탁본, 손기정 베를린 마라톤 우승 투구,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 반가사유상의 불상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중박의 5대 유물있다.

*11/4일 (화) 수필 반 문우들의 나들이 행사에 도움을 위해 이 글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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