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20분,
도시락 삼 남매 중 둘이 점심 선약이 있다.
그들은 장어덮밥을 생각하며 행복지수를 높인다. 그곳은 요즘 가장 ‘핫하다’는 용리단길 한복판. 길 건너 원불교 교당이 보이고, 그 옆에 간판 이름부터 강렬한 식당 하나—‘기마이’.
간판 아래 커다란 배너.
그릇을 가득 채운 장어 한 마리가 꼬르륵, 허기를 자극한다.
11시 30분.
“예약했습니다, 4명.”
창가 앞 넓은 창문을 따라 줄지어 앉는다.
“장어덮밥 4개요. 아, 장어탕도 나오죠? 서비스로…”
요즘 식당에는 혼밥, 혼술족을 위한 1인석이 꼭 있다.
예전엔 상상 못 하던 풍경.
우리는 가운데 붓다막 같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둘씩 마주 앉았다.
어딘가 대학교 미팅 테이블이 떠오른다.
각자 물건 하나씩 꺼내놓고, 그걸로 짝을 정하던 그 시절처럼—
우연이 필연이 되는 게임 같다.
드디어 장어덮밥이 나왔다.
양념 밥 위에 윤기 흐르는 장어 한 마리.
두툼한 살점을 입에 넣는 순간, 쫀득한 식감과 은근한 단짠이 혀끝에서 녹아든다.
단언컨대, 내 인생 최고의 장어다.
순식간에 덮밥은 사라지고, 이어지는 장어탕.
일본식 된장으로 간을 맞춘 국물은 비린 맛없이 세련되다.
무청이 깊은 풍미를 더하며, 속까지 시원하고 마음도 따뜻해진다.
살짝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선뜻 사준다면? 팀장님! 오늘 장어덮밥 인가요? 행복지수는 두 배가 아니라 서너 곱절로 치솟는다.
아주 특별한 메뉴, 그리고 먹는 행복감은 그렇게 사자성어로 태어난다. ‘먹행급상-먹고 있으면 행복지수, 급 상승’이다.
밥 한 끼가 주는 건 단순한 포만감만이 아니다. 함께 음식 등을 먹는 것은 우리의 낯선 경계심을 봉인 해제하는, 그건 의외로 큰 마법을 푸는 행복한 열쇠이다.
몇 달 전, 직원과의 껄끄러운 낯선 기류가 칼국수 한 그릇으로 풀렸다.
“요즘 나트륨 줄이려는데 배퉁이 너무 나와서, 이건만은 못 참겠네요.”
그 한마디에 같이 웃음이 터졌고, 그 직원의 보고서 내용이 달라졌다. 수정 횟수가 줄고 나의 배퉁도 함께 줄었다. 그렇게 둘만의 개선 피드백은 크게 향상 되었다.
예전의 어색했던 소개팅 자리의 서먹함은 단무지 두 개로 해결 되었다.
“혹시 두 개씩 먹는 타입, 나도 그런데?”
그냥 그 순간, 이 사람 괜찮다 싶었다.
나는 함께 돈가스를 먹을 때, 먼저 둘로 크게 잘라서 나눠 준다. 그 낯섦의 경계선을 허무는 방식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낯선 두려움과 경계심이 스스로 사라져 버리는 마법의 주문처럼.
심지어 매우 낯설었던 어느 간담회 자리에서, 누군가 준비한 따끈한 커피 한잔이 분위기를 완전히 바꾼 적도 있었다. 그 따뜻함의 배려 하나로 어색했던 조막 얼굴들이 조금씩 풀어져 행복한 하회탈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꽤나 오래도록 멀어진 친구.
언젠가 대학 뒷 골목 라면집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말, “여기 라면 맛은 여전하네.”
그 짧은 말이 둘의 마음을 데우고, 잠시 여운은 그간 서먹했던 우정을 슬며시 피어나게 했다.
밥 한 끼가 남기는 건 그 이상의 의미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음식은 그대로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한다. 스스로 경계심을 푸는 행복지수의 마지막 퍼즐과 같다.
혼자일 때와 함께일 때의 낯선 경계를 허물고,
우리는 식탁 위에서 진짜 행복을 만난다.
그 작은 기적은, 늘 가까운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상처럼 일어난다.
오늘은 누군가 하고 밥을 먹는 행운을 가져 보자. 무엇을 먹을까 보다 누구랑 함께 먹을까를. 그리고 행복한 상상을 해 보자!먹행급상의 마법을 외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