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누구나 늦잠을 꿈꾼다.
포근한 이불속에서 뒹구르 천천히 깨어나고, 소파에 친구처럼 기대어 나른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우리 집은 조금 다르다.
아내, 왕딸기 덕분이다.
왕딸기는 몇 년째 주말마다 절에 봉사활동을 다닌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쉬어야 할 주말을 타인과 나누는 일에 열심인 사람이다.
처음 봉사를 시작한 건 3년 전, 큰 딸기(큰 딸아이)가 힘들어하던 시기였다.
큰 딸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나운서와 승무원을 꿈꿨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세상을 멈추게 했고, 채용 기회는 번번이 닫혀버렸다.
막막한 마음을 안고, 왕딸기와 큰 딸기는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과 힐링을 위해 제주도로 한 달 살이를 떠났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바닷가 작은 마을을 함께 걸으며, 새로운 삶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에서 서로를 다독이고, 앞날을 다시 그려가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큰 딸기는 결심했다.
남을 돕는 길을 가겠다고.
그래서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히고, 편입 준비를 시작했다.
왕딸기 역시 마음속에 작지만 단단한 씨앗 하나를 심게 되었다.
그녀 역시, 세상에 작은 힘이 되어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절에서의 봉사는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대웅전 바닥을 맨손으로 닦고, 부처님 전에 올릴 과일을 정성껏 준비해야 했다.
백중절이나 천도재, 명절의 합동제례 등의 준비로 밤늦게까지 절에 남기도 했다.
특히 겨울에는 북극처럼 매서운 찬 기운 속에서, 여름에는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왕딸기는 묵묵히 자신의 손으로 하루를 쌓아 올렸다.
어느 날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늘 부처님 얼굴이 유난히 환하게 웃고 계셨어. 하루 종일 마음이 가볍고 행복하더라."
반대로, 부처님의 얼굴이 화난 듯 보여 마음이 무거웠던 날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내가 아직 수행이 부족한가 봐.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지."
웃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이, 남을 도우려는 순수함 그 자체 왕딸기다웠다.
왕딸기의 주말 아침은 늘 분주하다.
전날 밤 깨끗하게 다려놓은 예복을 챙기고, 회색 패딩과 털신을 신고 이른 새벽에 나간다.
절은 목조 건물이라 난방이 약하다.
겨울이면 바닥의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들고, 여름이면 사우나 같은 더위가 이어진다.
그래도 왕딸기는 그곳에서, 매번 새롭게 하루를 열며 보람을 찾고 있다.
3년간 이어진 봉사로 그간의 허리 통증이 심해져 올해 초 장기 봉사는 잠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다시 단기 주말 봉사에 나섰다.
절 입구 천막 아래, 왕딸기는 연등을 신청하러 오거나 그냥 오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누군가가 환히 웃으며 다가올 때마다, 아내의 얼굴에도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미소가 번진다.
봉사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맑게 닦는 수행의 한 부분임을 왕딸기를 통해 배운다.
"고단한 몸보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게 더 커.
내 손이 닿은 자리마다 조금이나마 따뜻함이 남아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간절히 전달되면, 그걸로 충분해."
왕딸기는 그렇게 말한다.
봉사로 시작한 하루는 한 주 동안 쌓인 피로를 씻어내고,
삶의 행복을 가져다주며 나를 좀 더 부드럽게 다듬어 준다고.
왕딸기가 환히 웃을 때,
그 미소는 햇살처럼 하회탈이 되어 주변까지 밝게 물들인다.
행복은 어쩌면,
거창한 소원 성취나 특별한 순간에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작은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도 치유되는 기적과 같다.
왕딸기의 주말은 그걸 가만히, 조용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