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과 산책, 우리가 마주한 작은 기적(2)

by 오엔디

행복한 우리들의 시간, 11시 30분.

사무실 한쪽 전자레인지에서 익숙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온다. ‘붕~’, ‘딸깍’, ‘삐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도시락 속 밥과 반찬의 고소한 냄새가 사무실을 가득 채운다.

그 냄새는 어느새 지친 이들의 마음을 데우고, 허기진 속을 조용히 위로한다.


12시, 점심시간이 되면 산책을 준비하는 이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된다.

양치질을 마치고, 도시락통을 막 헹군 셋이 함께 문을 나선다.

오늘은 햇살이 좋아 밖으로 걷기로 했다. 중앙현관을 지나면 광장엔 형형색색 깃발이 나부낀다.

잠시나마 지친 업무를 잊고 걷는 이 짧은 시간은, 생각보다 여유로운 짧지만 깊게 쉼을 준다.


젊은 두 동료는 앞서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 걷는다.

갓 아빠가 된 동료는 요즘 잠이 부족한 듯 피곤해 보이고, 신입 직원은 업무에 익숙해지느라 고단한 얼굴이다.

나 역시 예전 같지 않다.

2년 전, 췌장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치고 어렵게 일터로 돌아왔다. 체력은 여전히 회복 중이고, 하루하루가 낯설고 힘들며 조심스럽다.


조금 오르막을 올라 공기를 가르며 불어오는 봄바람에 마음도 개운해진다.

갈림길에 다다랐을 때, 셋은 잠시 멈춰 선다. 그때 한 명이 묻는다.

“붕어빵 어떠세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그 말에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가의 작은 행복 제안이, 모두의 피곤을 녹이는 데는 충분했다.


붕어빵 가게 앞에 도착하니, 사장님이 혼자 분주하게 움직인다.

“요즘 인건비가 너무 올라서요. 꽈배기는 접었어요.”

그러면서도 반죽을 붓고, 붕어빵 틀에 정성껏 슈크림과 단팥을 채운다.

어느새 우리 셋은 익숙한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커피를 사러 간다.


커피를 받기 위해 줄을 선 테이크아웃 가게.

큰 입구의 비닐 창 너머로 보이는 젊은 사장은 빠른 손놀림으로 잔을 채운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런 게, 바쁜 일상의 진짜 행복일지도 몰라.”


누구는 붕어빵을 입에 물고 “어릴 때 엄마가 사 주었던 것보다 너무 달콤한 맛이네요.” 하고 슈크림이 입술을 살짝 덮는다.

또 다른 동료는 “요즘 이 산책이 하루 중 가장 좋습니다.” 하고 조심스레 속마음을 꺼낸다.

그 말들 속에, 설명하기 힘든 따뜻한 행복감이 피어난다.

그리고 나는 잠시 떠올린다. 힘들게 병원 복도를 걷던 어느 날의 기억을.


그날, 내 손에는 항암 치료를 위한 처방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불현듯,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인가?’


그제야 깨달았다.

‘내려놓는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집착에 벗어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라는 걸.

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고, 오늘 덜 아파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행복은 뭐 그리 대단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점심시간의 햇살, 붕어빵 한 입, 커피 잔 위에 내려앉은 바람 한 조각.

그렇게 하루하루 1점짜리 행복을 모아간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쌓여, 어느 날 문득 100점짜리 행복한 인생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엔 100점짜리 큰 성취가 곧 행복이라고 믿었다.

누구보다 특별한 성과를 내고, 인정받고, 어딘가 당당히 올라서는 것.

하지만 지금은 안다.

붕어빵을 건네며 “오늘 좀 힘드셨죠?”라고 건네는 말,

창밖을 보며 “꽃이 참 예쁘네요. 이젠 완연한 봄이네요”라고 말해주는 사람,

“내일도 산책 가요”라는 작은 약속이,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행복은 그렇게, 스치듯 우리 곁을 다녀간다.

크고 눈부신 것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 속에서 조용히 피어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걷는다.

붕어빵 하나, 라테 한 잔, 그리고 서로를 알아주고 알뜰하게 품어주는 이 짧은 산책처럼.

그 안에 우리가 살아갈 이유가, 충분히 담겨 있으니까 우리는 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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