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5시.
"안평아, 밥 먹자."
엄니의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식탁 옆 작은 소반 위에는 갓 끓인 소고기 미역국과 노릇한 계란프라이 세 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치고는 꽤 푸짐했다.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
후다닥 계란 프라이랑 아침을 먹고, 양치질을 하려는데, 대문 앞 수돗가에서 또다시 부르는 소리.
"빨리 나와야지, 바지락 캐러 가야 한다."
내일부터 중간고사인데, 일요일 새벽부터 갯벌이라니.
투덜거리며 운동화를 꿰어 신었다.
성황나무 입구에 도착하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누룽지를 손에 쥔 채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삼거리 나무장터를 지나자 첫 버스가 부릉거리며 검은 연기를 뿜어낸다.
멀리 동이 틀 때쯤 왕대산 입구에 내리자, 넙적바위 너머로 어둑한 까만 갯벌이 끝없이 펼쳐졌다.
엄니는 물길이 좋은 맨 끝자락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쪽이 실한 놈들이 많다."
쇠삽과 호미를 번갈아 가며 뻘을 파헤치는 엄니 손길은 부지런하고 단단했다.
우리는 말없이, 몸을 굽히고 바지락을 캐기 시작했다.
한참을 뻘과 시름하다 보면 이내 조수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엄니는 복숭아뼈를 살피더니 급하게 말했다.
"이제 나가야 한다."
물이 차오르고, 왕대산 소나무를 기준 삼아 우리는 허둥거리며 뛰는 듯 갯벌을 빠져나왔다.
40킬로에 달하는 바지락을 서너 망태기에 담았다.
엄니는 머리에 이고, 나는 어깨에 둘러멨다.
버스는 짐이 많은 우리를 여러 번 그냥 지나쳤다. 그러자 엄니는 한 치 망설임 없이 버스 앞으로 걸어 나가 급하게 세우셨다.
그리고 내 손을 단단히 잡고, 망태기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수산물 어판장, 시장 입구 쪽에 도착해 좌판을 깔고 바지락을 팔기 시작했다.
엄니는 굳은살 박힌 손끝으로 씨알이 굵은 바지락을 하나하나 꺼냈다.
그저 말없이, 묵묵하게.
그날 번 돈은 8남매의 생활비와 학비였고 늘 부족하다.
어릴 때 나는 불평이 많았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갯벌까지 가서 바지락을 캐야 하냐고.
엄니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묵묵히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내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조용한 실천 속에 모든 게 담겨 있었다.
엄니는 '가장'이라는 이름을
큰소리 없이, 그저 묵묵하게
삶으로 보여주었다.
책임이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임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돼
오늘 같은 날,
그 조용한 책임의 무게를 다시 떠올린다.
말은 없었지만,
늘 곁을 지켜주었던 그 어머니의 온기가
여전히 내 삶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