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 9를 좋아한다.
언제나 꼭대기에는 ‘완벽’이라 불리는 10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건 내가 원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10은 어딘가 낯설고, 딱 맞게 닫힌 문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그 위에 ‘완성’이라는 팻말을 걸어둔 것처럼, 거기서부터는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세계 같다.
매일 아침 7시 9분, 지하철 9호선 맨 뒤 칸의 6-3 앞에 선다.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무표정하지만 익숙한 얼굴들. 공항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누군가는 아이 도시락을 싸고 나왔을 테고, 또 누군가는 간밤의 고민을 안고 나왔겠지. 19분쯤 지나면 환승역에 도착하고, 나는 조용히 내려선다.
그 짧은 시간,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하루와 숨결을 함께 나눈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늘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 조용한 리듬 속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나 역시 어떤 박자에 이끌려 살아가는 셈이다.
10이라는 숫자는 늘 부담스럽다.
완벽하다는 건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안하다.
그에 비해 9는 살짝 모자란 듯한 여유가 있다. 미완이기에 가능한 안심. 완벽보다 매력적인 ‘거의처럼’.
중학교 3학년, 연합 모의고사에서 전교 2등을 했다. 1등은 언제나 그렇듯 반장이었다.
사람들은 왜 1등을 놓쳤냐고 했지만, 나는 그 자리가 더 편하고 좋았다. 100점보다는 93점이, 1등보다는 그냥 2등이 더 좋았다.
조금 부족하다는 건 생각보다 좋은 감정이다.
뭔가 더 할 수 있다는 여지가 주는 편안함.
어쩌면 난 처음부터 완벽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조선 후기 정조대왕은 활을 쏘면 50발 중 49발을 과녁 정중앙에 맞췄다.
하지만 마지막 한 발은 늘 하늘을 향해 쏘았다.
신하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군자는 모든 것을 다 갖지 않는다. 무엇이든 가득 차거나 너무 지나치면 넘치는 법이다.”
다 가진 자였지만, 일부러 하나쯤은 비워둔 사람. 늘 여백을 남기는 것이 진짜 여유임을 알았던 군자. 그 꽉 찬 삶 속에서도 숨 쉴 틈을 지키려 했던 그 모습이, 어쩐지 닮고 싶었다.
반면, 아흔아홉 섬을 가진 자는 마지막 한 섬까지 탐하다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우리는 가끔, 그 ‘하나’를 채우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는다.
완벽이라는 욕심은 종종 우리 삶을 조용히 잠식해 버린다.
그렇듯 9는 그런 내게 작은 위로였다.
그 부족함이 곧 결핍이 아니라, 여유와 가능성이라는 걸 알려주는 숫자. 늘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면 다행이다.
내 삶엔 아직 열릴 문이 있고, 채워질 틈이 있어 그 가능성을 찾아가는 행복한 여정이 있다.
어느 전시회의 마지막 방에는, 관람객이 직접 이어 쓰는 ‘빈 페이지의 책’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누군가 9페이지까지 정성껏 써두고 멈춘 책.
나는 10번째 페이지를 넘기려다 잠시 손을 멈췄다. 그 여백이, 마치 나를 기다리는 듯 조용히 바라보는 듯했다.
혹시 내가 무언가를 적는 순간, 이 이야기는 닫히고 말지는 않을까. 완성되는 대신,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것. 나는 그게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 여백을 그대로 남겨 둔 채 나왔다.
다 쓰지 않은 문장, 다 끝내지 않은 이야기.
그 미완의 상태가 오히려 더 많은 상상과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어쩌면 삶도 그렇지 않을까.
비워둔 페이지가 한 사람의 다음 이야기가 되고, 그 마지막 문장을 남겨두는 용기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이 될 수 있다면.
10이 ‘완결’이라면, 9는 ‘가능성’이다. 나는 이제 완벽을 쫓는 대신, 한 페이지쯤 비워둘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숨 쉴 여백이 있는 문장처럼, 행복의 여운이 오래 남는 그런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