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 조용한 새벽, 종이 위에 단어 하나를 적는 순간. 창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태어나, 세상의 언어로 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조용한 시작에는 언제나 권리와 책임의 문제가 함께 자란다.
내가 처음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올렸을 때, 가장 설레었던 순간은 누군가 내 문장을 읽고 공감해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에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누군가 내 글을 가져가지는 않을까. 혹은, “이건 내가 쓴 거랑 비슷한데?”라며 모방의 애매한 선을 긋지는 않을까.
세상은 이미 수많은 문장과 장면들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 ‘진짜 내 것’을 말하려면 우리는 어떤 기준을,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어느 날 지하철 안. 습관처럼 SNS를 넘기던 중, 익숙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는 사람을 닮고, 사람은 도시를 닮아간다.”
내가 쓴 글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낯선 계정, 멋진 폰트, 수천 개의 ‘좋아요’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댓글엔 “누가 이런 멋진 말을 썼죠?”, “책에 나올 법한 명문장이네요.” 하지만 정작 내 이름은 없었다.
망설이다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이 문장, 제 글에서 가져오신 건가요?”
잠시 후 답이 왔다.
“헉, 죄송해요. 그냥 어디서 본 문장인 줄 알았어요. 작가님이셨어요? 앞으로는 꼭 출처 남길게요!”
나는 그 답장을 보고 잠시 생각에 몰두한다.
그 사람의 의도에 악의는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글은 마음에서 새롭게 태어나지만 세상에 나오는 순간, 그 마음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선생님께 여쭤 본 적이 있다.
“남의 그림을 따라 그리면 안 되는 거예요?”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처음엔 흉내를 내도 좋아. 하지만 나중에는 너만의 색을 찾아야 해. 왜냐하면 너의 이야기는 너만의 것이어야 하니까.”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방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순간, 창작은 의미를 잃고 방황한다.
창작자는 소비자의 이해를 바라며, 소비자는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그 상호 존중이야말로 창작 문화의 기반이며, 저작권의 본질이다.
상상해보자. 모두가 서로의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세상. 다른 이의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하되, 그 가치를 지켜주는 사회.
저작권이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마음 연결의 가교가 되는 미래.
그 세계에선 법보다 양심이 앞서고, 규제보다 존중의 문화가 먼저 작동한다.
자연스럽고 조용한 존중 속에서, 창작은 보다 자유로워진다.
지적 재산이란 말은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누군가의 순수한 마음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마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헤밍웨이는 “가장 훌륭한 글은 지우고 또 지우며 완성된다”고 했다. 나 역시 그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 글 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그리고 그 마음이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단 한 줄을 인용하더라도, 그 문장에 담긴 ‘마음’까지 함께 전해지기를. 그것이 저작권의 진짜 의미는 아닐까.
“창작은 혼자 쓰는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가 함께 완성해가는 서사다.”
그 서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손과 마음의 글씨를 알아보고, 상호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유로운 창작 문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