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산책을 간단히 마친 삼 남매는 어린이 광장의 한편, 야외 카페에 들렀다. 여기는 참새 형제의 단골 맛집이기도 하다.
오늘도 두 마리 참새가 교대로 날아들며 빵 부스러기와 쿠키 조각, 운 좋으면 케이크 한 점까지 맛본다.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누가 언제 뭘 흘리는 지도 다 아는 것처럼 테이블 밑으로 총총총 분주하다.
신입이 "팀장님! 아이스라테 맞지요? 여기 쿠키 진짜 맛있는데 하나 추가할게요!"
젊은 아빠는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조금 후, 커피 얼음 잔 속으로 하얀 우유가 연갈색 커피를 타고 천천히 가라앉는다. 마치 위스키 언더락처럼 잔잔하게.
어느 가수는 이런 광경을 보고 옛 추억을 떠올려 노랫말을 썼다고 하던데.
나도 그 장면에서 잠시 생각과 마음이 멈춘다.
양평의 어느 아침. 창밖을 가득 메운 참새 무리들이 단체 군무를 펼치며 마당 한편, 작은 물웅덩이 수영장에 모인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꼬르륵~물을 마시고, 깃털 사이에 물을 끼얹고, 작은 머리를 박으며 샤워를 한다.
작고 귀여운 새들이 보여주는 자유롭고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문득 참새와 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릴 적 일요일 새벽, 나는 양은 세숫대야와 박달나무 회초리를 챙겨 논으로 향했다. 이미 볏줄기 사이로 잘게 푸드덕 거리는 갈색 물결로 뒤 덮였다.
“땡땡땡!”
흰 노란 대야를 힘차게 두드리자 참새 떼가 날아오른다. 논두렁을 따라 이리저리 뛰다 보면 어머니가 싸 준 누룽지 생각에 손이 간다.
지치고 허기진 배에 누룽지와 물 한 모금을 축이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이번엔 고약한 농약 살포다.
나는 펌프를 밀고 당기고, 동생은 노란 호스를 잡고 아버지를 향해 죽~~ 뛴다. 아버지는 논 한가운데 서서, 은색 농약대를 좌우로 휘 둘리며 뿌연 분무를 푸른 벼 사이로 흩뿌리듯 스쳐 지나간다.
쏟아지는 햇살, 흘러내리는 땀, 떡처럼 달라붙는 검정 거머리 떼, 그렇게 힘든 벼농사일이다.
“아버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세요?”
말없이 거머리를 떼시던 아버지는 한참 후에 조용히 말했다.
“못 배워서 그런다.”
그 짧은 말속엔 말 못 할 무게감이 느껴졌다.
주중엔 불편한 몸으로 청사 미화일을, 주말엔 농부로,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단 하루도 쉬지 않으셨던 아버지.
그렇게 50대 초반, 어느 날 아침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지금, 카페 바닥을 쪼아대는 참새 형제를 보며 나는 문득 누군가를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냥 귀엽다고 지나칠 그 풍경. 하지만 내겐 그것이 아버지의 삶이고, 나의 추억이기도 하다.
그런 작은 참새가 속삭인다.
“그간 잘 버텼다. 잘 살아냈다.”
얼마 전, 아파트 단지에서였다.
이른 아침, 환경미화원 어르신이 쓰레기봉투를 정리하며 작은 빗자루로 인도 가장자리를 쓸고 있었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출근길을 재촉했지만, 그분은 묵묵히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아침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단지 앞을 깨끗하게 해 주셔서요.”
환경미화원은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그 아이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었다.
“내가 고맙지. 아침에 이런 말을 듣다니… 오늘 하루가 참 따뜻하고 힘이 나는구나.”
그 말이 어찌나 맑고 또렷하게 울렸는지,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쳤을 그 장면, 그 짧은 인사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어쩌면 그간 오래도록 버텨온 삶 전체를 위로했을지도 모른다.
삶이란, 결국 그런 순간들의 모임 아닐까.
기억되지 않을 평범한 하루에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삶의 지탱이 되고,
가장의 무게를 굳건하게 이겨낸 조용한 격려가 되어준다.
오늘도 참새 형제는 카페 바닥을 쪼아댄다.
작은 발자국 소리가 귓가에 머문다.
짹. 짹. 째.
어쩌면 그것은 참새가 아닌 아버지의 발자국, 그 어르신의 빗자루 소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나 자신을 다독여 본다.
“그래, 잘 살아왔구나. 오늘도 고맙고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