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꼬마 별똥대, 잉어들의 생존 교훈(9)

by 오엔디

아침 6시 30분. 평소보다 한 시간 이른 출근길.

도심 수변공원에 밝고 투명한 햇살이 내려앉는다.


회랑 너머 그늘진 물가, 잿빛 왜가리 한 쌍이 조용히 수면 위 움직임을 주시한다.

잠시 후, 한 마리가 천천히 큰 날개 짓을 하며 물 위에 앉는다. 수면 위로 연분홍 비단잉어를 낚아챈다. 가장 화려한 것부터 사라지는 법일까?


이제 남은 건 짙은 회색 잉어들.

그중에서도 작은 잉어들은 늘 큰 원을 그리며 함께 다닌다. 적으로부터 시선을 흩트리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 전략. 함께 움직이며 크게 보이도록 유도하는 것.


잉어밥을 널찍이 뿌려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혼자 한가로이 유영하는 큰 잉어보다, 작고 빠르게 흐르는 작은 것들의 큰 무리에게 시선이 쏠린다. 그들은 서로 밀치거나 빼앗지 않는다.


서로 틈을 내주고, 중심을 공유하며, 한 방향으로 큰 흐름을 만든다.

작지만 질서 있는 그 큰 원 속에, 생존을 위해 살아남는 그들만의 지혜가 숨어 있다.


그들을 보며 오래 전의 '땅꼬마 별똥대'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몸집도 작고 조용한 아이였다. 나처럼 조용한 다른 둘과 함께였고, 사람들은 우리를 '땅꼬마 별똥대'라 불렀다.


말을 잘하고 수완과 꽤가 좋은 나, 손재주가 좋아 만능 뚝딱이 영호, 늘 아이디어 넘치는 수연.

우리는 늘 3인 1조로 행동하며 행복한 학교생활을 맘껏 누렸다.

때로는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또는 놀이체험의 중심에 우뚝 서거나 그 마지막에 닿기 위해.


우린 그때마다 필요한 사람을 채워 넣었다.

체육과 운동을 잘하는 덩치 형, 그림을 잘 그리는 예쁜 누나, 쿨하고 다재다능한 전학생.


땅꼬마 별똥대는 학용품을 나눠 쓰고, 운동회 응원 문구를 대신 써주고, 보름달 빵이나 통닭 치킨 등을 나눠 먹기도 하며 뭐든지 함께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동맹을 만들고 큰 원을 그려도 보았다. 그런 작은 존재들이 시골에서 살아남는 방식과 지금 잉어들의 큰 원은 많이 닮아 있었다.


그 생존 방식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주말에 찾은 성수동 폐 건물의 한 옥상.

낡은 공장 건물 위, 한 청년이 만든 공유 옥상 정원. 그는 퇴근 후 직접 텃밭을 일구고, 이웃과 채소를 나누며, 주말이면 아이들을 초대해 흙놀이와 미니 공장의 작물을 개방한다.


그 텃밭은 정육면체 화분으로 정리되어 있고,

한편에는 벤치와 조명이 있어 야경 속 와인 모임도 함께 열린다. 그는 말했다.

“옥상에선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요.”


건물 주인도, 인근 카페 직원도, 동네의 노부부도 모두 그 작은 정원에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이윤보다 관계, 규모보다 연대 지속성.

나는 그곳에서 잉어 떼처럼 흐르는 도시의 생존법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따뜻한 장면이 마음을 붙잡았다.


퇴근길마다 지나던 골목 입구에 오래된 문방구.

언제부턴가 그곳엔 작은 스탠드 하나가 켜져 어둠을 밝힌다. 문방구 주인 할머니가 혼자 귀가하는 아이들을 위해 매일 밤 그 시간에, 작은 조명을 켜두신다고 했다.


“요즘은 아이들도 어두운 것을 두려워 하니까.

내가 불을 켜두면 조금은 마음이 놓이더라고.”

할머니는 그렇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 불빛 아래서 아이들은 장난처럼 손전등 놀이를 하고, 부모들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여 본다. 그 작고 따뜻한 스탠드 불빛이 매일 골목을 지켰고, 누군가의 하루를 품었다.


살아남기 위한 작은 연대는 시간이 지나면 삶의 방식이 되고, 결국은 우리가 서로를 지키는 든든한 지킴 울타리가 된다.


땅꼬마 별똥대의 작고 다정한 동맹,

성수동 옥상 위 초록빛 연대,

골목을 지키는 한 줄기 불빛,

물속에서 서로 흐름이 되어 살아가는 잉어들처럼..


세상의 가장 작은 존재들이 모여 만든 원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이어져 있다.


그건 생존을 넘어선 공존의 언어다.

누구도 혼자선 빛나지 못하니까.

함께여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고,

서로여서 작아도 쓰러지지 않았다.


오늘도 도시의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자기 몫의 따뜻한 햇살을 나누며,

아무도 모르게 서로의 든든한 하루를 붙잡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눈에 띄지 않아도, 아주 작아도 괜찮다.

우리의 작고 둥근 연대는 언제나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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