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들판.
논 가장자리에 짚단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두 손에 삽을 든 꼬마 둘이 하얀 들판 속으로 성큼 들어선다.
“안평아, 어디서부터 파야 돼?”
“그냥 적당히 거리 두고 파. 그러다 보면 미꾸라지가 나올 거야.”
겨울바람 속, 어린 목소리가 논바닥에 가볍게 부딪힌다.
“반 깡통쯤 찼는데, 더 해야 해?”
“응. 깡통 가득 채워야지. 난 좀 쉬고 있을게.”
나는 볏짚단에 등을 기대고 누운 채 게으른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눈 위에서 꿈틀대는 작은 생명체 하나가 보인다. 황금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미꾸라지다.
한겨울의 미꾸라지는 여름보다 다섯 배는 비싸다. 그 돈으로 나는 아이들에게 통닭을 사주었고, 자장면 두 그릇이면 오락실은 한바탕 웃음으로 가득 찼다.
1,000원짜리 깡통 하나가 친구를 불러 모았고,
지루했던 겨울방학은 작은 축제로 바뀌었다.
돈은 단순한 종이 이상의 가치가 따라다닌다.
그건 하루를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의 열쇠였다.
나는 적은 수입으로 자유를 나눴고,
그들은 그 자유 위에 웃음과 우정을 더했다.
경제적 자유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적은 수입이 사람을 모이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하고,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동력이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불렀다. “안평아~ 미꾸라지 안 잡냐!”
그건 단지 놀이 제안이 아니라, ‘같이 있고 싶다’는 작고 진한 우정의 신호였다.
나는 그 부름 하나로 세상 속에 존재했고,
그들 속에서 중심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잊지 못할 하루.
눈이 녹지 않던 2월의 몹시 추웠던 어느 날,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우신 날이었다.
집에 혼자 남은 막내 꼬마 동생이 감기에 걸려
열이 펄펄 끓는 채로 방 안에서 울고 있었다.
내게는 미꾸라지를 팔아 모은 1,200원이 있었다.
그 돈을 들고 마을회관 입구, 약국으로 달려가
가루약과 해열제를 샀다.
아저씨가 계속 물어봤다. “누가 아프니?”
나는 조용히 헐떡이며 대답했다. “우리 동생이요.”
약 봉투를 손에 쥐고 집으로 달려오는 길, 그 고사리 손 안엔 동생의 울음소리도, 내 벅찬 숨소리도, 미꾸라지의 펄떡이는 생존 본능도 함께 들러붙어 있었다.
그날 밤, 동생은 천천히 열이 내렸고 작은 손으로 내 옷자락을 꼭 붙잡고 잠이 들었다.
그 온기가 오래도록 내 가슴에서 식지 않았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돈은 단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온전히 써야 ‘내 것’이 된다는 걸.
단짝 친구가 학교도 잘 나오지 않고, 말수도 적었다. 어느 날 인가, 그의 누나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를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그날 오후, 나는 미꾸라지를 팔아 생긴 몇 백 원을 들고 문방구에서 종이 연 하나를 샀다. 색종이로 꼬리를 만들고, 연줄에 짧은 편지를 부쳤다.
“자, 저 하늘 위에 네 마음 실어 보내. 누나가 꼭 받을 거야.”
다음 날 아침, 그는 말없이 논둑에서 연을 날렸다.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연, 그 끈을 쥔 그의 작은 어깨가 아주 조금 흔들리는 걸 봤다.
울고 있는 건지 끝내 알 수는 없었지만, 그날 이후로 그는 다시 학교에 나왔고, 점심시간이면 조용히 우리 곁에 앉았다.
그 연 하나가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조금은 녹였다고 나는 믿고 싶다.
돈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단순한 몇 백 원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 주기도 하고, 그저 곁에 있다는 마음을 전해주는 조심스러운 손편지처럼.
그래서 오늘도 눈 밭의 추억을 글로 써 본다. 하얀 겨울을 건너게 해 줄, 누군가의 마음에 연 하나 띄워 줄, 또 하나의 우정 이야기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