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우리는 차 한잔의 품격이다
글을 쓴다는 건, 차를 우려내는 일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시간이 필요하고, 정성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마음을 내는 방식’이 중요하다.
오래 전 떫었던 마음을 향과 함께 무심의 맛으로 우려 낸다.
좋은 글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차 한 잔처럼, 삶의 체온을 조절하고, 혼탁한 마음을 맑게 해 준다.
채근담은 말한다.
“한 잔의 차는 한 그릇의 도(道)다.”
삶이 어지러울수록, 마음이 분주할수록, 우리는 안정과 고요를 찾는다.
글쓰기도 이와 같다.
바쁜 일상 속 잠깐 멈춰 앉아, 문장이라는 찻 잎에 물을 부어 사유를 우려내는 일.
그것이 곧 ‘도(道)’다.
“속세에 몸 담고 있어도 마음이 청연 하면, 깊은 산속과 다를 바 없다.”
글도, 삶도 결국 마음에 달렸다.
중용에서는
“기쁘고 노하고 슬프고 즐거운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 그것이 중심이다.”라고 글을 쓸 때 감정이 앞서는 것을 경고한다.
감정이 앞서면 글이 쉽게 흐트러진다.
말보다 먼저 다스려야 하는 건 마음의 물결이다.
그 중심에서 출발한 문장은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는다.
그 글은 흔들리는 사람에게 고요한 호수를 만들어 준다.
당신이 쓴 단 한 문장이 누군가에겐 ‘살아도 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도덕경은 말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다투지 않고, 가장 겸손한 낮은 곳을 찾아 흐른다.
글도 그러해야 한다.
설득하려 들지 않아도 설득되고, 위로하려 애쓰지 않아도 위로가 된다.
그저 낮게 흐르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글.
그런 글이야말로 사람의 심연을 건드린다.
부드럽고 단단하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장자는 말한다.
“진인(眞人)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는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런 글.
장자의 호접몽처럼, 글은 나를 낯설게 만든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게 한다.
좋은 글은 나를 벗어나 다시 나를 만나게 하는 한 잔의 맑은 차다.
차는 세작처럼 부드럽게 시작해, 보이차처럼 깊은 여운과 아~~라는 탄식을 남긴다.
글도 그래야 한다.
첫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가볍게 두드려야 하고,
마지막 문장은 오래도록 향기로워야 한다.
차를 따를 때, 우리는 한 번에 잔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
한 잔 한 잔, 천천히 나누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정성껏 따른다.
글도 그러하다.
문장 하나하나를 독자에게 조심스레 건네고,
마지막 마침표는 독자의 마음에 남는 향처럼 깊어야 한다.
중국에는 ‘문향배(聞香杯)’라는 긴 잔이 있다.
차를 마시기 전에 향부터 맡기 위해 존재하는 잔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당신의 글을 읽기 전, 이미 당신의 마음을 맡는다.
당신의 문장은 누군가의 감정을 먼저 끌어당길 수 있다.
일본 다도에는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 있다.
‘오늘의 만남은 평생 단 한 번뿐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당신이 오늘 쓴 단 한 줄의 문장은,
누군가에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한 문장이다.
글은 삶을 바꾼다 — 차처럼, 천천히 그러나 깊고 심오하게 글향으로 물들인다.
한 청년이 있었다.
취업을 준비하며 하루 10시간 넘게 스펙을 쌓던 시절, 번아웃에 시달렸다.
하루는 우연히, 아주 짧은 글 하나를 만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진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일지도 몰라요.”
그 문장을 읽고 그는 깊은 밤 창가에 앉아, 조용히 울었다.
그 문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허락을 주었고,
자기 삶에 처음으로 ‘쉼’을 선물해 주었다.
어느 한 중년 여성이 있었다.
아이 셋을 키우며, 어른 셋을 돌보며, 하루를 시간 단위로 나눠 살았다.
그러다 브런치에 올려진 글 하나를 읽었다.
“세상은 당신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지만, 당신의 세상은 잠시 쉬어도 된다.”
그 문장을 프린트해 냉장고에 붙여두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릴 때마다 자신에게 다정히 인사했다.
“그래, 오늘은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그녀는 말했다.
“그 문장 하나가 내 삶의 속도를 바꿔주었어요. 내 인생에 처음 생긴 ‘쉼표’였어요.”
그러니 오늘 당신이 우려내는 문장, 그 한 잔의 품격은...
어쩌면 누군가의 삶 전체에 남는 글향이 될지 모른다.
가슴속에 평생 남는 문장,
오래도록 기억되는 단 한 잔의 글.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 한 줄이 누군가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을 감게 하며,
가만히 자기 안의 소리를 듣게 합니다.
어느 날, 오래도록 잠 못 들던 한 사람이
당신의 문장 한 줄을 베고
편안히 잠이 들지도 모릅니다.
좋은 글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따뜻한 차 향과 같은 것.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향.
당신이 오늘 써 내려간 그 한 문장이, 누군가에겐 “살아도 괜찮다” 는 신호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라는 대박 사건의 본질이다.
마음을 우리는 한 잔의 차처럼, 느리지만 뜨겁게, 그리고 향기를 머금은 글로 피어난다.
그것이면, 글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