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대박 사건(4)

9회 말 2 아웃 끝내기 장외 홈런이다

by 오엔디

요즘 KBO 야구가 뜨겁다.

그 열기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글쓰기란, 가끔 야구를 닮는다.

그것도 9회 말 2 아웃, 무관심 속 끝내기 장외 홈런 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전설의 포수 요기 베라가 말했다.

인생에도, 글에도, 그리고 야구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모두가 떠난 자리.

응원가도 멈췄고, 조명도 흐릿해졌을 때.

혼자 조용히 타석에 선다.

그리고—‘딱.’

흰 공이 한 문장이 되어 날아간다.

커다란 호흡과 함께 담장을 훌쩍 넘긴다.

그 순간, 바뀐다. 분위기도, 흐름도, 나도.

그게 바로, 내가 말하는 대박 글쓰기다.


야구장에서 선수는 홈에서 출발해 홈으로 돌아오는 거리, 108미터를 달려야 한다.

불교의 108 번뇌처럼, 글쓰기 여정도 그만큼의 노력과 끝없는 의심, 늘 망설임을 품는다.

어떤 날은 문장 아홉 줄을 써 놓고도 지워버린다.

또 어떤 날은 한 문장에 아홉 시간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모두 헛되지 않다.


야구의 리듬은 ‘셋’이다. 3 타자, 3 아웃, 9회까지.

글도 마찬가지다.

쓰다가 막히면 잠깐 쉬자. 3초, 3분, 30분.

숨 고르고, 천천히 내면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자.

움직임은 물처럼, 마음은 거울처럼.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여유로운 정리’다.


국민타자 이승엽은 말했다.

“야구는 정직한 스포츠다.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쓴다고 바로 홈런이 되는 건 아니지만,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 했다.

글쓰기는 설득이지 전쟁이 아니다.

묵묵히 진심을 담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타석에 선다.

기억과 감정, 감성과 이성의 경계에 선다.

그리고 한 줄을 세련되고 위트 있게 던진다.

정확히 맞을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MLB 몬스터투수 류현진처럼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마음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 하라 타쓰노리는 말했다.

“승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단 하나의 문장을 위해 하루의 긴 감정을 붙들고 고민한다. 그리고 행복한 결과를 기다리며 짤은 하루의 인연을 붙잡는다.


채근담은 말한다.

“뜨거운 물속에서도 얼음을 꺼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

『도덕경』은 덧붙인다.

“무릇 말이 많으면 궁하고, 좋은 말은 많지 않다.”

글쓰기는 말을 덜어내는 기다림의 예술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낸 끝에,

마침내 한 줄, 한 문장의 진심이 남는다.


그 한 줄은 도시의 소음 사이,

잠깐 스쳐간 감정을 붙잡은 문장일 수 있다.

그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도달한다면,

그건 바로—9회 말 2 아웃, 장외 홈런이다.


2001년 일본 프로야구.

신인 이치로는 연속 무안타에 시달리고 있었다.

9회 말 2 아웃,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타석.

그는 조용히 안타 하나를 쳤다.

경기를 뒤집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코치진은 말했다.

“그때, 그는 이치로가 되기 시작했다.”


글쓰기도 같다.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나’를 바꾸는 한 줄이면 충분하다.

그 순간, 우리는 ‘작가가 되기 시작한다’.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우리 안에 씨앗처럼 남아 있다.

9회 말 2 아웃.

그 한 방은 지금 우리가 쓰지 않고 숨겨둔 저 내면의 문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타석 앞에서 나는

세이노의 문장을 떠올린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일수록

노력은 적고 기대는 크다.

기대하지 말고, 대신 글을 써보라.

쓰면 된다. 쓰지 않으면, 영원히 결과도 없다.”


글 한 줄이 없는 인생은,

기록되지 않은 삶이다.

그래서 다시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한 문장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가?”


기대에 찬 말 대신 문장으로.

순간의 감정 대신 진심으로.

그렇게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그리고 글쓰기를 믿는다.

그 단 하나의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순간—

나는 저 안의 깊숙한 곳에서 막 발아된 씨앗처럼 순수한 작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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