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허기(식탐)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식탐은 단순한 식욕의 문제가 아니다.
먹고자 하는 갈망이나 욕구도 없이 본능처럼 먹기만 한다. 그것은 마음의 허기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정서적 허기, 감정의 결핍이 먹는 습관으로 외부에 표출된 결과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단 것을 찾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다. 초콜릿 한 조각, 크림이 풍성한 케이크 한 입.
먹는 순간은 행복한 달콤이지만, 그 짧은 본능 뒤에 어김없이 공허함이 찾아온다.
오전 업무의 과부하 스트레스, 오후의 단골 메뉴처럼 밀려드는 지루함, 생활 루틴이 만들어낸 가짜 허기가 그 실체다.
그것은 진짜 배고픔이 아니었다.
가짜 허기, 뇌가 기억하는 보상 회로
이런 가짜 허기는 뇌의 연결고리가 만드는 단순 보상 시스템이 아닐까? 뇌는 그 ‘잠깐의 쾌감, 행복, 그리고 가짜 허기’를 기억하고 학습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것을 먹어야 해.”
그 기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중독 또는 집착처럼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그렇게 시스템화되어 자동적으로 뇌에 연결된다.
식탐은 무의식의 반복된 연기 결과다
우리가 가짜 허기를 구별하지 못하면,
무의식적으로 입에 무언가를 계속 밀어 넣는다.
맛도, 행복도 없는 무의식의 반복과 목적 없는 시스템이 극한으로 순환한다. 심지어 왜? 먹는지도 모른 채 그냥 빠르게 집어삼킨다.
그건 먹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라 무의식의 반사작용이다.
가짜 허기를 극복하는 핵심은 마음 챙김의 작은 변화에서 습관처럼 시작된다. ‘왜 먹는가’를 의식하며 입에 넣는 순간, 마음 챙김의 뇌는 그것을 새롭게 재부팅된다. 예전의 행복했던 좋은 기억과 새로운 학습과정을 연결하여 재시스템화 한다. 진짜 배고픔과 정서(감정)적 허기를 구분하게 된다.
글쓰기는 마음의 허기를 꿰뚫는 도구다
우리는 종종 마음이 허기질 때 아무 죄 없는 입버릇만 탓한다. 요즘엔 삶이 무기력하고 도통 입맛이 없어서 전혀 먹지를 못 한 다처럼.
원인도 모른 채 입맛만 나무랄 게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에게, 나 자신에게 행복했던 기억을 찾아 더 자주 말을 걸어보자. 그렇게 긍정의 변화를 새롭게 연결, 습관화하면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지금 진짜 배고픈 건, 내 마음이 아닐까?”
이것의 극복방법으로 작지만 확실한 실천전략을 살펴보면,
하나, 본능적 욕구나 자극 없이 당기는 달콤한 간식 대신 여유롭고 따뜻한 허브차 한 잔 하기.
둘, 건과류 한 줌, 삶은 달걀 같은 진짜 영양 간식 챙겨 먹기.
셋, 하루 2리터 물을 꼭 챙겨 먹고 충분한 잠자기 습관 길들이기.
넷, 매일 감정 다이어리 쓰면서 힐링습관 반복하기.
다섯, 식사 전 5분 명상 또는 깊은 쉼 호흡 도전해 보기.
여섯,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음미하며 식사하기 등이 있다.
먹는 습관을 고치는 건 결국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습관화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처럼 글쓰기가 있다.
조선의 글 쓰는 이들, 허기를 꿰뚫다
조선의 선비들은 시대의 허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허기를 글로 견디고, 기록하며 작은 행복으로 습관화하였다.
허준 – 몸의 허기를 돌보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마음과 위장은 하나라고 했다. 마음이 상하면 위장이 상하고, 위장이 무너지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무너진다고 보았다.
배고픈 굶주림과 병고가 일상이었던 백성들을 위하여 그는 약보다 더 근본적인 방법을 썼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위하여보다 전문적인 글을 썼다.
정서적 허기나 개인의 깊은 심정 등을 세세하게 먹는다는 것으로 표출한 생명적 근본 원리,
그것이야말로 동의보감의 핵심이었다.
이익 – 탐욕의 허기를 경계하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사람은 배가 고파서보다 마음이 비어서 더 큰 죄를 짓는다”라고 했다.
그는 집 한 채 없이, 고구마와 보리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 하지만 그는 허기진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밥을 넘어 생각의 습관을 만드는 글을 썼다.
“탐욕이 문제다. 식욕은 잠깐이지만, 그것이 익숙해지면 결국 사람을 삼켜버린다.”
그는 배고픔조차 늘 성찰의 기회로 삼았고,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욕망을 다스릴 것인가에 집중했다.
정약용-조선 후기 최고의 글쓰기 선비
그는 권력투쟁에 밀려 가족과 생이별한 채 강진 땅에 유배되었다. 그의 거인적 어깨 위엔 정조의 개혁 정신, 가슴 속엔 백성들의 진심된 허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늘 묻고 또 물었다. “백성은 왜 굶는가?”,
“관리들은 왜 부패하는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지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직접 답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난한 농민을 위한 『전론』,
청렴한 수령을 위한 『목민심서』,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서와 철학서 수십여 권.
그의 글쓰기는 고립된 유배지에서도 끊기지 않은 진심 허기를 꽉 채운 ‘백성을 향한 배려’였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강진에서 정약용은 가난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논두렁을 자주 거닐 때면,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말했다.
“사람이 배고프면 도둑이 되기 쉽고,
관리가 배부르면 백성이 스스로 굶게 된다.
그러니, 무엇이든 글을 쓰려거든
배고픈 이들을 먼저 생각하거라.”
그는 평생, 글쓰기를 권력의 수단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을 달래고 위로하며, 일상의 행복을 찾아 전달하였다.
그렇게 수십 년을 희생하면서 글쓰기를 긍정의 마법 도구로 습관화하였다.
결국, 식탐은 정서적 허기다
단 걸 찾는다고 해서 꼭 배가 고픈 건 아니다.
많은 경우, 그건 감정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스트레스, 무료함, 외로움, 무기력감…등등
"나는 왜? 이 달달한 간식만 원하고 있지?"
"지금 정말 배가 고픈 걸까? 허기진 마음은 진심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냥 모든 게 마음이 공허한 걸까?"
이렇듯 허기를 다독이는 한 끼의 글쓰기처럼.
글쓰기는 한 끼 식사의 마법을 부른다.
그렇게 한 문장, 두 문장 써 내려가다 보면
놀랍게도 진짜 배고픔이나 정서적 허기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글쓰기가 텅 빈 마음의 위장을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채우는 순간을 맘껏 누려보자.
그래서, 글쓰기는 한 끼 식사처럼 매일 한 순간의 행복한 습관이다.
그렇다. 먹는 걸 참는다고 모든 것이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본능처럼 무조건 끊는 건 지속되지 않는다. ‘왜’ 먹고 싶은지를 스스로 알고 한 끼 식사처럼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오랫동안 글쓰기를 잇는 최고의 해결책이다.
한 끼 식사를 건너뛰면 온몸이 약해지듯,
매일 한 줄의 글을 놓치면 전체 마음도 점점 메말라 간다.
또한, 글쓰기는 마음의 한 끼 식사다. 의도적으로, 천천히, 음미하며 쓴 한 문장이
오늘의 한 끼, 마음의 허기를 달래준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를 견디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 알 게 된다.
글쓰기는 평범하지만, 대박 사건이라는 걸.
그리고 우리가 글을 쓸 때, 내 마음이 어떤 허기를 느끼고 있는지를 먼저 들여다본다면,
그 글은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때론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 때론 아주 조용한 혁명이 된다.
정약용이 그러했듯.
지금 우리가 쓰는 한 줄의 문장마다
내 마음의 진짜 허기를 채우고,
어쩌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쓰기란 참,
대단한 대박 사건이 아닌가?